마음에 심은 소나무
금호강이 휘돌아 흐르는 들녘에 자리 잡은 세천마을 어귀에는 사진 동호인들이 진을 치고 있다. 노부의 굽은 허리처럼 가지를 늘어뜨리고 홀로 선 노송이 모델이다. 마을 노인들은 “늙은 소나무가 우리보다 낮다”며 입을 모은다.
예로부터 소나무에 대한 예우는 극진했다. 보은의 정이품송은 벼슬까지 하사받은 귀한 몸으로 삼척의 미인송과 혼례까지 올렸다. 예천의 석송령은 재산세를 내는 당당한 지주이기도 하다. 숭례문 복원에 사용된 금강송은 최고의 재질로 인정받는다. 성삼문은 충절가(忠節歌)에서 소나무의 기개를 읊었고 선비들은 자신의 기개와 임금에 대한 변함없는 충절의 표시로 가까이했다. 백성은 기근이 들면 속껍질을 얇게 벗긴 송기로 죽을 쑤어 허기를 면하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가을걷이가 끝날 때쯤이면 아버지는 마당 귀퉁이에 삭정이를 단으로 엮어 쌓아두곤 했는데 겨울을 날 수 있는 땔감인지라 누구보다도 어머니가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동생과 함께 갈퀴와 포대를 둘러매고 떨어진 솔잎 채취에 나서기도 했다. 연탄이 보급되기 이전에는 마른 솔가지는 여물을 끓이거나 군불을 지피는 최상의 땔감이었다. 부엌문을 열면 연기에서 향긋한 솔냄새가 풍겨 나왔다. 소나무는 죽어서도 부엌을 지킨 어머니와 애환을 함께한 동반자였다.
오십 년 전만 해도 마을 뒷산(金溪山)은 산정 부근을 제외하곤 민둥산이었다. 유독 산정에는 소나무가 빼곡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노루의 서식처이자 나무꾼들이 호시탐탐 도벌을 일삼던 곳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선산을 지키던 할아버지를 두고 탕건 노루라 불렀다. 노루처럼 빠른데다 항상 탕건을 쓰고 다니며 도벌꾼을 쫓아내곤 했다. 그때는 울창한 솔밭을 바라보기만 해도 어깨가 으쓱해졌다. 지금도 선산은 원시림을 방불케 할 정도로 곧게 뻗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솔밭을 가꾸고 지키는 일은 할아버지 삶의 전부였다.
집에서 30여 분쯤 차를 몰면 합천호에 다다른다. 하늘과 산을 담은 호수를 따라 한참을 가노라면 길가에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합천호의 명물인 미인송이다. 이른 아침이면 물안개를 허리에 두르고 멋을 부린 미인송은 호수와 멋진 조화를 이뤄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낸다. 해 질 녘에는 수면에 드리운 그림자까지 붉게 채색된다. 마치 큰 불기둥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가 다시 수면 깊숙이 침잠하는 모습은 장엄하다. 그 위엄과 숭고함이 온몸을 전율케 한다. 천 년이 흘러도 그 자태는 영원할 것만 같고 사방으로 뻗은 가지에도 고고함이 서려 있다. 두 갈래 가지 중 한 가지가 수면에 닿을 듯 길게 뻗어 호수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마치 곡예사가 묘기를 끝내고 무대에 안착하듯 평온함이 느껴진다.
사진작가인 동료가 있다. 그는 만나기만 하면 노송 예찬론을 편다. 혼자 보기에는 아깝다며 곧장 카메라를 코 앞에 들이대곤 했는데 미인송도 그때 알게 되었다. 그가 노송의 매력에 심취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른 아침이었다. 비보를 전한 그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허전함이 전신을 파고들었다. 친한 친구의 알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던 그때처럼 허탈함이 가시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푸르던 잎이 서서히 황갈색으로 변한 채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미인송은 수면을 향해 무희가 몸을 젖힌 듯 아름다운 자태였다. 한동안 그 모습이 눈에 밟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날엔 그 자태가 너무나 고고하고 환상적이어서 수많은 사진애호가의 발길이 이어졌다. 죽어서도 명성을 잃지 않았다니 사람보다 존귀해 보인다. 시샘이 나서일까. 누군가가 몰래 베어 버렸다고 했다. 나무도 비범함을 지니면 부관참시를 당한 것 같아 씁쓸함이 가시지 않았다.
소나무는 사시사철 푸름을 잃지 않는 듬직하고 당당한 존재다. 우리네 삶은 종종 소나무에 비유되곤 한다. 사람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왔음이다. 인내, 충절, 기상, 지조, 절개 등 중후한 이미지를 담아 두고 있다. 수 천 년을 함께하는 동안 소나무를 지켜본 현인들이 내린 결론이니 틀림이 없을 것이다. 걸핏하면 서로를 헐뜯고 반목하는 인간들보다 한 수 위의 사고를 지닌 모양이다. 애국가에도 소나무의 당당한 기상을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내 생에도 소나무의 기품 중에 하나쯤은 닮아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다. 베어질 운명에 처한 소나무 한 그루를 얻어다 마당에 심었다. 밋밋하고 볼품이 없다 보니 마을 사람들이 한마디씩 거든다. 집과 어울리게 굽고 모양새 있는 거로 교체하라는 것이다. 금방 옮겨 심었는데 그럴 순 없었다. 가지가 잘려나간 부위의 상처가 아린 걸까. 웅크리듯 홀로 있는 모습이 애처롭다. 상처 난 소나무를 바라보니 우리 가족의 처지와 무척 닮았다. 아들은 직장을 따라 타지로 떠났고 도시에서 줄곧 자란 딸은 마을에 친구가 없다. 아내도 이십 년간 사귀던 이웃과 작별한 채 홀로서기에 열중하고 있다. 나무도 가족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중이다. 소나무에 물을 듬뿍 주며 흔들림 없이 자랄 소나무 한그루를 내 마음에 심어 본다.
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장(달성복지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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