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철도 독점' 회귀, 국민의 발을 볼모로 잡을 텐가

국토교통부가 기어이 칼을 빼 들었다. 지난 8일 발표된 ‘고속철도 통합 로드맵’은 사실상 코레일과 SR의 물리적 결합을 기정사실화했다. 내년 3월 교차 운행을 시작으로 6월 복합 연결, 그리고 2026년 말 완전한 기관 통합까지, 정부의 시계는 거침없이 돌아간다. 겉으로는 차량 운용률 향상과 좌석난 해소라는 달콤한 명분을 내걸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번 통합 결정이 과연 국민 편익을 위한 철도 산업의 발전적 대안인지, 아니면 노동자 친화적을 표방하는 이재명 정부가 민주노총에 진 ‘정치적 부채’를 갚기 위한 무리수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설명대로 KTX와 SRT의 교차 운행이나 복합 연결은 승객들에게 반가운 소식일 수 있다. 수서에서 KTX를 타고, 서울역에서 SRT를 타는 것은 소비자 선택권 확대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굳이 두 기관을 하나로 합쳐야만 하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시스템 연동과 운행 협약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기술적 조치를, 굳이 거대 조직의 통합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장 치명적인 위험은 '경쟁 체제의 소멸'과 그로 인한 '국가 철도망의 안보적 위기'다. 지난 수년간 SR의 존재는 코레일의 방만 경영을 견제하는 ‘메기’ 역할을 해왔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국가 철도망의 ‘안전판’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철도노조가 파업을 강행해 KTX가 멈춰 설 때도, 국민들은 SRT라는 대체재가 있었기에 최소한의 이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한쪽이 멈추더라도 국가 동맥이 완전히 끊기지는 않게 하는 이중 안전장치였던 셈이다.
하지만 두 기관이 통합되어 거대 공룡 코레일로 회귀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단일 노조가 철도 전체를 장악하게 되는 순간, 파업은 곧 대한민국 전역의 ‘올 스톱(All Stop)’을 의미한다. 여객 수송의 불편함을 넘어 물류 대란과 산업 마비로 이어질 국가적 재난 상황이, 오로지 단일 노조의 결정 하나에 좌지우지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가 기우가 아닌 이유는 현 정부의 인적 구성과 기조에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철도 기관사 출신으로 철도노조위원장과 민주노총 위원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노동계의 목소리가 국정 운영에 반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으나, 국가 기간산업의 구조 개편이 특정 집단의 오랜 숙원을 해결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 친화적 정부라는 기치 아래 추진되는 이번 통합이, 결과적으로는 거대 노조의 기득권 강화와 파업의 파괴력만을 키워주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독점은 필연적으로 비효율과 오만을 낳는다. 경쟁자가 사라진 공기업은 서비스 개선이나 경영 효율화보다는 내부 조직 논리에 함몰되기 쉽다. 게다가 그 독점 기업이 파업이라는 강력한 무기까지 독점하게 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불편해도 멈추지는 않는다"는 현재의 이원화 체제가 주는 안도감을, 정부는 "통합하면 더 좋다"는 장밋빛 전망으로 덮으려 해선 안 된다.
2026년 말, 통합이 완료된 후 만약 철도 총파업이 발생한다면 그때 정부는 국민들에게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어쩔 수 없는 불편"이라고 하기엔, 스스로 없애버린 안전장치의 부재가 너무나 클 것이다. 국민의 발을 담보로 한 무리한 통합 추진, 지금이라도 멈춰 서서 냉정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국가의 동맥은 정치적 셈법이나 부채 상환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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