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문화

[오피니언] 평행선 _ 우보 만보(漫步)

더피플매거진 2026. 2. 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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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선 _ 우보 만보(漫步)

하 종 혁

수필가 _ 하종혁


나란히 뻗은 두 선은 서로 만나지 못한다. 제아무리 늘여도 끝끝내 제 길을 갈 뿐이다. 어렸을 때 옥신각신하는 부모님을 더러 보면서 저렇게 안 맞는 분들이 결혼은 어떻게 하게 되었을꼬 고개를 갸웃했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얼굴 붉히던 모습에 언제까지 저렇게 평행선만 달릴 건가 싶어 혀를 차기도 했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무렵이었다. 대한제국은 가쁜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세찬 바람 앞의 등불이 된 나라를 구하려는 몸부림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다. ‘의병’과 ‘애국계몽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지만 이 두 갈래 구국운동의 갈피는 전혀 달랐다. 계몽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은 의병을 도도한 시대 흐름을 거스르는 우매한 집단으로 비하했고, 의병 항쟁에 뛰어든 이들은 개화의 편에 선 사람들을 일본의 등에 업힌 매국 세력이라고 욕했다. 그리하여 안타까운 일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개화 세력이 간행하던 신문에서는 의병을 ‘폭도’나 ‘도적’으로 부르는가 하면, 예천에서 일어난 의병들이 안동의 ‘협동학교’를 습격하여 그 학교의 교사를 살해하는 끔찍한 일조차 있었다.

17세기 초, 중국에서는 만주족이 세운 후금이 명을 대신하여 바야흐로 대륙의 주인공 행세를 하려던 참이었다. 그 와중에 조선은 정묘년에 호란을 당하여 후금과 형제의 맹약을 맺었고, 세력이 더한층 강해진 청이 급기야 군신 관계를 강요하였다. 

조선의 조정은 주화와 척화로 나뉘어 거세게 다투다가 임금이 청의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그예 병자호란을 당하게 된다. 청 태종이 직접 군사를 휘몰아 남한산성을 에워쌌고, 마침내 인조는 삼전도에서 전에 없던 치욕을 겪게 되었다. 척화론자 김상헌은 통곡하면서 최명길이 쓴, 청국에 보낼 국서를 찢었다. 이 광경을 본 주화론자 최명길은 이를 주워 말없이 이어 붙였다고 한다.

죽로차竹露茶는 대밭에서 자란 찻잎을 덖어 만든다. 대나무밭의 아침이슬을 먹고 자란다고 해서 생긴 이름인데, 차 애호가들이 아주 귀하게 여긴다. 선암사나 하동 등지에서 자생의 차나무를 흔히 볼 수 있지만, 담양에서 일부러 대밭에 차를 심어 가꾸는 걸 보았다. 동행한 친구가 여린 이파리를 따주기에 씹어보니 은은한 향이 감돌았다. 그의 말인즉, 대나무의 그늘 탓에 햇볕을 덜 받은 찻잎이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넓고 튼실히 자라서 그렇단다. 곁에 있던 주인장이 거들었다. 차나무가 성장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조건이 ‘반음반양’인데, 그러한 조도照度를 가장 잘 유지하는 곳이 바로 대밭이라는 게다.

비록 같은 수종의 나무라도 한 장소에 뿌리를 같이 내리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그런데 차나무와 대나무는 신기하게도 마치 한 뿌리처럼 곁에 바짝 붙어 지낸다. 대나무는 뿌리가 지표면 가까이 얕게 뻗는 천근성 작물이고, 차나무는 뿌리가 땅속 깊이 내려가는 심근성이라서 그렇단다. 이렇듯 향하는 방향이 다른 두 나무가 서로 부대끼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어울린 모습이 참으로 싱그러웠다.

훗날 최명길은 명과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심양瀋陽의 옥에 갇혔고, 그곳에 미리 수감 중이던 김상헌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최명길은 죽음이 눈앞에 닥쳤음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노구의 김상헌을 보고 그의 절의에 탄복했다. 김상헌 또한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끝내 본인의 뜻을 굽히지 않는 최명길의 의연한 자세를 보면서 그의 주장이 오랑캐를 위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그동안 맺힌 마음을 풀고, 시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누었다. 

애국계몽운동 계열과 의병 세력들도 서로 손을 내밀었다. 계몽운동 단체인 신민회는 남만주의 삼원보에 독립전쟁을 대비하는 기지를 건설했고, 신학문을 보급하던 일에 매진하던 안중근과 김좌진은 무력 항쟁에 뛰어들었다. 의병의 전통을 이은 무장 단체들은 조선 왕조를 부활하려는 ‘복벽復辟’에서 벗어나 점차 백성들이 주권을 가진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공화주의’ 이념을 받아들였다. 비록 그들이 간 길은 서로 달랐으나, 구국의 일념으로 좆은 목표는 하나였기 때문이리라.

나는 부모님처럼 살지는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그래서 각기 다른 두 선이 하나의 점으로 만나는 게 결혼 아니겠냐며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나란히 뻗은 두 선이 멀리 가서는 한 점에서 만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소실점이라고 한다더라고 너불거리면서 말이지. 하지만 나의 결혼 생활은 영락없이 부모님의 그것을 닮아갔다. 아내와 같은 이불 덮은 지 삼십 년이 넘는데, 여전히 달포가 멀다고 큰소리를 낸다. 이제는 큰일을 들먹이며 다투지 않게 된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별것도 아닌 일로 티격태격하는 부모의 모습을 딱하게 바라보며 아이들이 빈정거린다. 그런 소리를 들을라치면 나는 굳이 심드렁하게 대꾸하고 만다.

  “그러면, 큰일을 가지고 싸우리? 평행선은 결단코 멀어지지 않는 법이여.”


#평행선 #하종혁 #죽로차 #김상헌 #더피플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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