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 역사적 논란
-최초의 피아노는 대구시 중구가 아닌 부산
-최초의 피아노 유입지 달성군이 아니다?
-1900년보다 3년 앞서 부산 해관사에서 피아노 연주 기록 발견
대표적인 건반악기인 피아노는 피아노포르테(pianoforte)의 준말이다. 1709년에 이탈리아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Bartolommeo Cristofori 1655-1731)가 피아노를 발명한 후 약 200년 후 우리나라에 피아노가 들어왔다. 우리나라에 피아노가 언제 들어왔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어 설이 분분하다.
1930년대 잡지 ‘동광’에 실린 글을 보면 1910년대 어느 날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 덕수궁 석조전에 머물던 고종의 생일잔치에 한국 최초의 피아니스트로 일컬어지는 김영환(1893~1978)이 고종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보다 앞서 김영환은 ‘남기고 싶은 이야기:양악백년’에서 1894년 우리나라 광무국 기사로 초빙된 프랑스인 마르텔(Emile Martel)이 1905년 초에 결혼을 하면서 피아니스트인 그의 아내 아말리(Amalie)가 가져온 것으로 보았다는데, 아말리는 독일인으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군악대장을 지낸 에케르트(Franz Eckert)의 맏딸이다.
또 다른 기록은 대구지역 선교사이자 대구제중원에 근무했던 헨리 브루언의 기록물이 담긴 1901년 5월 선교보고서에 대구제중헌(현 동산병원)을 세운 존슨(Johnson)의 아내 에디드 파커의 피아노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러나 2013년 ‘음악이론가 손태룡’은 이보다 1년이나 앞선 미국의 북장로교 해외선교사인 리차드 사이드보텀(Richard Henry Sidebotham, 한국명 사보담·史保淡)이 1900년 초에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사보담은 개항기 부산에서 활동했던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리차드 사이드보텀(Richard H. Sidebotham, 1874~1908)의 한국식 이름이다. 그는 1874년 영국에서 출생해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의 파송으로 1899년 한국으로와 1907년까지 대구와 부산지부에서 활동했다. 사보담은 1907년 안식년으로 귀국하게 되었지만 1908년 12월 3일 우연한 가솔린 폭발사고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후 사보담의 외손녀인 사라 커티 그린필드(Sara Curtice Greenfield) 박사는 그녀의 어머니가 태어난 한국 부산을 방문하여 외조부모의 귀중한 유품을 부산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이때 사보담의 아내인 에피(Effie Alden Bryce)가 미국의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 피아노 운반 과정을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편지에 사보담 목사는 결혼직후 아내인 에피(Effie Alden Bryce)와 함께 1899년 부산에 도착해 대구로 발령을 받아 선교활동을 한다. 사보담 부부는 미국에서 부산항에 도착한 피아노를 다시 낙동강 나룻배에 싣고 수로를 따라 사문진선착장(현 대구 달성군 화원)으로 옮겼다. 그리고는 강변선착장에서 16㎞나 떨어져 있는 대구 중구 종로 집까지 피아노를 옮기기 위해 첫날에는 21명, 둘째 날은 20명, 셋째 날은 31명의 짐꾼을 고용해 사흘에 걸쳐 작업했다고 한다. 짐꾼들이 피아노 운반에 상여용 막대기를 사용했다. 상여용 막대기로 운반도구를 만들어 피아노를 올려놓고는 밧줄로서 단단히 묶은 다음 양편으로 각각 10여 명씩 마치 나무상여를 메고 가는 것처럼 운반했다. 논과 산길, 언덕길, 개천 등을 지나면서 가까스로 집에 도착했는데 막상 거실에 넣으려니까 출입구가 좁고 낮아서 결국 문을 뜯어내고 들여놓았다고 한다.
사보담은 미국으로 돌아갈 당시 이 피아노를 부산까지 옮긴 것으로 알려져 이때 옮겨진 피아노는 8년 동안 한국에 머물다가 미국으로 되돌아갔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 편지를 근거로 달성군과 달성문화재단은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가 대구 종로이며, 달성군 화원읍 사문진나루터는 최초의 피아노가 유입된 나루터로 선언했다. 그동안 달성군은 ‘100대 피아노 콘서트’, 뮤지컬 ‘귀신통 납시오’ 등 문화행사와 사문진나루터에 피아노 조형물 설치 등 수십억 원의 예산을 피아노 홍보에 사용했다.
그러나 3년 앞선 1897년 부산에서 피아노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제3대 부산해관장인 헌트(Johnathon H. Hunt, 조선명 하문덕(何文德))는 1897년에 부산주재 영국부영사를 겸임할 때 빅토리아여왕 즉위 6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면서 그의 부인이 초청인사에게 피아노 선율을 선사했다고 이ㅇㅇ 부산세관박물관장과 근대 역사학자인 네프(Robert D. Neff)가 소개했다.
헌트 해관장은 그해 6월 20일과 21에 양일에 걸쳐서 성대하게 축하 기념파티를 열었다. 첫날에는 부산항이 한 눈에 바라보이는 복병산 산자락의 해관장 관사에서 부산주재 외국인 및 지역유지를 초청해 저녁만찬과 함께 화려한 불꽃놀이를 했다고 한다. 이러한 헌트 해관장의 활동 상황을 미루어 볼 때 이미 1900년 전에 부산에는 피아노가 반입돼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달성군과 달성문화재단은 철저한 고증 없이 최초의 피아노 유입이란 명분으로 ‘100대 피아노 콘서트’ 등 관련 행사를 만들어 매년 수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언론에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 유입지가 사문진나루터가 아니라면 수십억 원의 예산 낭비에 대한 비난뿐아니라 전국적 망신거리가 될 수 있다.
이와 관련 지역에서는 “역사적 문화 콘텐츠에 대한 선점도 중요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야 한다. 지금이라도 철저한 고증을 통해 사문진나루터를 통해 들어온 피아노가 우리나라 최조의 피아노인지 밝혀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참고 ; Hunt 제3대 부산해관장 부인의 피아노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영자신문 코리아헤널드와 코리아타임지 드에서 칼럼을 실었던 미국인 Robert D. Neff의 칼럼 'Jonathon H. Hunt'에 기록되어 있으며 참고로 Neff와 멍지대교수인 정성화씨가 공동출판한 'Korea through western eyes' 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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