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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양군이 다녀간 하목정!! 낙동강 물 위로 지는 노을에 따오기 날고 배롱나무꽃 만발하다!!

비슬신문 2024. 8. 2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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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양군이 다녀간 하목정!!
낙동강 물 위로 지는 노을에 따오기 날고
배롱나무꽃 만발하다!!

삼복더위를 대표하는 여름꽃으로 무엇이 있을까?
목백일홍이 있다. 화초가 아닌 나무로 작열하는 태양에 맞서며 백일 동안 피고 지는 꽃이라 명명되었음이다. 우리에게는 배롱나무꽃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꽃은 줄기의 이곳저곳을 간질이면 꽃이 달린 가지들이 간지럼 타는 것처럼 흔들려서 ‘간지럼나무’라고도 하고, 나무를 잘 타는 원숭이도 떨어질 만큼 나무줄기가 미끄러워 ‘원숭이미끄럼나무’라고도 한다. 
배롱나무꽃이라고 하면 관내에 유네스코에 등재된 도동서원이 있다. 그곳뿐만 아니라 사진작가들이 또 많이 찾는 곳이 더 있다.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된 하빈의 하목정(霞鶩亭)이다. 하목정은 달성군과 성주군의 경계인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성주대교가 한눈에 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하목정이란 이름은 ‘노을 속으로 날아오르는 따오기’를 의미하는데 이 정자의 이름은 당나라 왕발이 지은 등왕각서(滕王閣序)에 나오는 문구 「지는 노을은 한 마리 따오기와 나란히 날고 가을 강물은 긴 하늘과 한 빛이다 (落霞 與孤鶩齊飛 秋水는 共長天一色)」에서 따왔다고도 한다. 

하목정은 1604년경, 전의 이씨인 낙포 이종문이 임진왜란 때 팔공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고 여러 고을의 수령을 지내다 벼슬에서 물러나 이곳에 건물을 짓고 풍경을 즐기며 만년을 보낸 곳이다. 
인조가 낙포선생의 아들인 수월당(水月堂) 이지영(李之榮)을 어전에서 만났다. 능양군이었던 인조는 광해군이 왕위에 있을 때 동생 능창군이 누명으로 죽고 아버지마저 홧병으로 잃게 된다. 그런 아픔이 있는 그가 들렀던 하목당이 생각나 “강산의 풍경이 좋은 곳을 택해 잘 지어졌는데 왜 부연을 달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수월당은 ”士庶人(사서인. 벼슬자리에 있거나 문벌이 높은 집안의 사람인 사대부와 벼슬이 없는 일반 백성인 서인을 함께 이름)의 사실(私室)이라 못했다“고 하자, 임금은 정자는 사가와 다르다며 내탕금 은(銀) 200냥을 하사하며 왕궁에서나 할 수 있는 부연을 달게 해 1624년에 중수하였다.
수월당은 임금의 배려로 중수하게 되니, 사사로이 거처하지 않겠다고 한다. 하지만 인조는 임금이 내린 자취만 표하면 된다며「霞鶩堂」(하목정 처마 아래에 있음)이란 세 글자를 써서 하사하며 걸도록 했다.


하목정의 대청 내부 상부에는 한시들이 있다. 시판(詩板) 일부가 관리 소홀로 분실되기도 했지만 시인, 묵객, 명사들이 다녀가며 남긴 것들이다. 이로 봐서 全義 李氏(전의 이씨)의 별당이나 사랑채의 범위를 넘어 대구와 달성지역의 유학자와 선비들의 학문과 사회교류의 장소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18인의 시판(詩板)으로는
이덕형(李德馨.1561~1613)), 김지남(金止男.1559~1631), 조국빈(趙國賓), 이제(李穧), 류근(柳根.1549~1627), 정두경(鄭斗卿.1597~1673), 이지익(李之翼.1625~1694), 이숙(李䎘.1625~1690), 남용익(南龍翼. 1628~1692), 오도일(吳道一.1645~1703), 권해(權瑎. 1639~1704), 조현명(趙顯命.1690~1752), 김명석(金命錫. 1675~1762), 蔡재공(1720~1799), 이희평(李羲平), 김유연(金有淵.1819~1887), 이건창(李建昌.1852~1898), 김택영(金澤榮.1850~1927)이 그들이다.
이 중, 한음 이덕형(李德馨) 선생의 시 「題 霞鶩亭(제 하목정)」 한 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重湖鋪帶兩龍橫 遙野羅渙畵不成 (중호포대양용횡 요야라환화불성)
중호가 띠처럼 두르고 두 산줄기 길게 뻗었는데
들판이 멀리 펼쳐있어 그 아름다움 그리기도 어렵구나
曉靄雜煙沈渚濕 落暉和浪湯江平 (효애잡연심저습 낙휘화랑탕강평)
새벽 안개는 연기와 섞여 물가에 잠겨 있고
저녁 석양빛은 물결과 어울려 강물 위에 출렁이네!
西山細雨簾心爽 南浦殘霞鳥背明 (서산세우렴심상 남포잔하조배명)
서산의 가랑비에 주렴 안도 시원하고 
남포 노을은 새 등에 반짝이네!
可惜子安留語少 賞奇輸與麴先生 (가석자안유어소 상기수여국선생)
애석하구나! 황자안이 아무 말 남기지 않으니 
좋은 경치 완상하며 좋은 술과 마주하네


하목정 뒤편에는 전양군(全陽君) 이익필(李益馝) 선생의 사당이 있다. 선생의 호는 하옹(霞翁)이다. 선생은 수월당(水月堂) 이지영(李之英) 선생의 증손으로 숙종 29년 무과에, 영조 4년에 호남좌도 수군절도사에 승진 임명,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금위우별장에 제수되어 난군(亂軍)을 토벌했다. 왕이 남대문까지 나와 위로하고 전양군(全陽君)에 봉하고 평안도 병마절도사에 제수하였다. 만년에는 벼슬에 물러나 하목정을 거닐며 시주(詩酒)로 자적하다 영조 27년(1751)에 별세하자 자헌대부 병조판서 겸 지의금부훈련원사에 추증하고 시호를 양무(襄武)로 내렸다.

사당은 약 250년 전의 건물로 규모가 비교적 큰데 이곳에서 불천위 제사를 지낸다. 
선생이 하목정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 즉 16경을 읊은 시가 전해지고 있는데
1경은 떨어진 노을과 외로운 따오기(洛霞孤鶩)), 맑은 바람과 밝은 달(淸風明月), 먼 개(浦) 돌아오는 돛(遠浦歸帆), 긴 들 목동의 피리 소리(長郊牧笛), 가야산 개인 안개(伽倻晴風, 금오산 푸른 멧부리(金鰲翠岑) 비슬산 새벽 구름(琵瑟曉雲), 구봉산 저녁 볕(九峰夕照), 십리의 밝은 모래(十里明沙), 한 구비 창파(一仙滄波), 동호의 연밥 따기(東湖採蓮), 형제바위 고기 낚기(兄岩釣魚), 단풍 숲 고기잡이 불(楓林漁火), 버들 물가 저문 연기(柳洲莫煙), 관가나루 건너는 나그네(官津渡客), 16경 작은 마을 가랑비(小村細雨) 등이 그것이다. 

폭염에 열대야로 잠을 설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럴 때면 냉방시설이 잘된 실내에서 여름을 나는 것보단 붉은 배롱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지는 하목정에서, 사시사철 푸른 빛을 잃지 않고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힐링하는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으리라. 자, 떠나자! 

참고: 전의이씨 예산공파종중 하목정 보존회


우남희 기자(Woo795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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