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는 ‘만나’입니다.
미뤄둔 통장을 정리하고 은행 문을 나서려는 순간 아내의 걱정스런 말투가 목덜미에 내려앉습니다. “이젠 수입도 없는데 기부금을 줄여야지요. 이참에 정리하고 갑시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스러웠습니다. 일방적으로 후원을 끊는다면 실망이 클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장을 꺼내 후원대상이 몇 군데인지를 확인합니다. 다섯 손가락으로는 부족한 듯합니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성경 말씀을 들추며 후원 문제만큼은 내게 맡겨 달라 했습니다. 아내도 웃음으로 동의해 줍니다. 때로는 수시로 후원을 하다 보니 건수가 많은 편입니다. 비록 수입이 줄었다 해도 기부금을 줄일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10년 전, 대구의 중·고등학생들을 인솔하여 일본 학생유네스코 대회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후쿠오카 청소년 수련원에서 5박 6일 동안 합숙하며 봉사활동과 해양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이 타이이타이’ 병에 걸린 환자를 돌본 학생들의 체험 발표 시간은 진한 감동의 물결이었습니다. 고통까지도 나누려는 듯 혼신을 다한 봉사였기에 그들이 천사로 보였습니다. 함께 참여한 한국 학생들도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순수함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봉사에 전율이 전신을 파고들었습니다. 평소에 그들을 쪽발이 놈이라 비하했지만, 일상화된 기부와 봉사활동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습니다. 그 선연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아직도 제 가슴이 뛰곤 합니다. 돌이켜보니 저도 그 무렵부터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 같습니다.
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워런 버핏은 매년 1조 원이 넘는 돈을 자선사업에 기부한다고 합니다. 지난해는 무려 2조 원이 넘는 거액을 기부했고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이 45조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당당하게 벌어 사회에 환원하고 있는 버핏이나 빌 게이츠가 존경스럽습니다. 그 많은 재산을 자식에게 상속하는 게 아니라 자선단체에 기부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재산싸움으로 시끄러운 롯데나 삼성, 현대 등 재벌그룹이 통 큰 기부를 한다는 소식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빛나는 전통을 이어가는 서구의 지도층이 부럽기만 합니다.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철칙이 서구사회에만 통용되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합니다. 왜 우리나라 재벌들은 기부나 자선사업을 펼치지 못하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대부분 사람은 임종을 앞두고 후회하는 한 마디가 “좀 더 베풀 걸”이라 합니다. 움켜지기만 했던 것을 뒤늦게 반성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흔히들 가지고 있는 만큼 행복해질 거라는 생각을 하지요. 행복의 크기는 결코 가진 것에 비례하진 않을 겁니다. 오래전에 일입니다.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할머니의 손은 고목의 표피처럼 거칠었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는 주름만 가득했습니다. 한평생 노점에서 배고픔을 참으며 모은 전 재산을 장학기금으로 내놓았다는 뉴스를 접하고 가슴이 먹먹해져 왔습니다. 할머니의 기부에 감명을 받은 건 나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팔순 잔치 대신 홀로 사시는 어른들을 위해 다니던 노인복지시설에서 조촐한 잔치를 열었습니다. 당신도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제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했지요. 그 집을 나설 때는 그동안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과 채소를 팔아 푼푼이 모아둔 5백만 원을 몽땅 내기도 했습니다. 신앙인의 참모습을 자식들에게 손수 보여 주신 것입니다. 아깝지 않으냐는 물음에 내 평생에 정말 잘한 일이라며 뿌듯해할 때 제 콧등이 시큰해져 왔고 작은 전율이 전신을 휘감았습니다.
지난 7월 1일 자로 달성복지재단 대표이사직을 맡았습니다. 복지의 근간은 나눔이고 나눔은 기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20만 군민이 공감하는 복지를 위해 재단에서 지혜를 모으고 있습니다. 우선 나눔 문화를 확산시켜 나가고자 합니다. 나눔은 금전이나 물품, 재능도 가능합니다. 복지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복지서비스를 확대하겠습니다. 사회적 약자에게는 웃음과 희망을 안겨주겠습니다. 아울러 노인, 장애인, 청소년과 아동까지 생애주기별로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렵니다. 그리하여 군민이 함께하는 따뜻한 복지사회를 열어가겠습니다.
‘코이’라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어항에 키우면 4~5cm, 호수에 키우면 15cm, 넓은 바다에선 무려 1m까지 자랍니다. 세계 각국도 복지사회를 위해 달음박질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우리도 복지라는 코이를 키워나가야 합니다. 바다에서 자란 코이처럼 복지도 크게 확장해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재단에서는 군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과 동참을 끌어내기 위한 ‘천사(1004)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천사운동은 매월 천원을 기부하는 소액 나눔입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해 주길 기대합니다. 작은 나눔이지만 너와 내가 참여한다면 복지 달성을 활짝 꽃피우게 될 것입니다.
때마침 후두두 소리 내며 굵은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메말랐던 대지를 촉촉하게 적셔 줍니다. 타들어 가던 농심도 작물도 생기를 되찾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이겠지요. 우리 모두 참여하는 작은 기부도 군민에게는 ‘만나’가 되겠지요.
* ‘이타이이타이(Itai-itai)’는 ‘아프다. 아프다“는 일본어
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장(달성복지재단 이사장)
'오피니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내염[ stomatitis ] (0) | 2015.09.16 |
---|---|
주택 내 안전을 책임지는 기초소방시설 설치 의무화! (0) | 2015.09.16 |
옥연지에 큰 별이 뜨다 (0) | 2015.09.09 |
스트레스 해소법 (0) | 2015.09.09 |
형님 (0) | 2015.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