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경제

영벽정(暎碧亭)과 시낭송회

비슬신문 2019. 8. 2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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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벽정(暎碧亭)과 시낭송회

 

영벽정(暎碧亭)은 대구의 서쪽 끝자락인 달성군 다사읍 문산리(汶山里) 낙동강 강변에 있는 정자이다. 이 정자는 아암 윤인협(牙巖 尹仁浹,1541~1597)선생이 선조18(1585)에 건립하였다. 선생의 자는 덕심(德深) 호는 아암(牙巖)이며 파평윤씨(坡平尹氏)로서는 다사에 맨 처음 터를 잡은 인물이다.

 

선생은 1541525일에 한성(서울)에서 태어났다. 선생이 문산리에 거주하게 된 배경에는 조부의 관직과 관계가 있었다. 조부의 휘는 탕()인데 문과에 급제하여 시강원(侍講院) 벼슬을 거쳐 상주목사(尙州牧使)에 재직하였다. 선생은 젊어서 할아버지를 따라 상주에 내려와서 빼어난 영남의 경치를 두루 살피다가 터를 잡은 곳이 바로 문산이었다.

 

영벽정이 건립된 시기의 문산은 행정구역상으로 대구부(大丘府) 하빈현(河濱縣) 하남면(河南面) 지리(旨里) 지역에 해당한다. 당시에는 정자 문화가 성행하여 우리 지역 낙동강 변에 많은 정자가 지어졌다. 영벽정 상류에는 현감(縣監) 이종문(李宗文,1566~?)의 하목정, 낙애 정광천(洛涯 鄭光天, 1553~1594)의 아금정(牙琴亭)이 이었고, 하류에는 생원(生員) 윤대승(尹大承,1553~?)이 건립한 부강정(浮江亭)이 있었다. 그중 아금정과 부강정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그러나 현재까지 잘 보존된 영벽정에는 많은 글이 남아 있다. 정자의 벽면에는 상량문(上樑文), 기문(記文) 그리고 시판(詩板) 등이 걸려있다. 정자를 찾아 풍류를 즐기고 글을 남긴 인물들을 살펴보면, 임하 정사철(林下 鄭師哲,1530~1593) · 낙애 정광천(洛涯 鄭光天,1553~1592) · 백포 채무(栢浦 蔡楙,1588~1670) · 전양군 이익필(全陽君 李益馝,1674~1751) · 임재 서찬규(臨齋 徐贊奎,1825~1905) ·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1833~1906) · 우당 김수용(愚堂 金洙龍,1910~1972)등이 있었다. 정자에 글을 남기는 전통은 400여 년 동안 이어져왔다.

 

특히, 정자 주변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영벽정팔경(暎碧亭八景)이 아암공실기(牙巖公實記)에 전해져 온다. 영벽정팔경은 생원(生員) 윤종대(尹鍾大,1763~?)가 지었다. 윤 생원은 성주에 거주한 선비로, 영벽정에 자주 방문한 인물이다. 그가 쓴 팔경을 살펴보면, 1경 행탄풍범(杏灘風帆) 2경 다림연류(茶林烟柳) 3경 연포호월(蓮浦皓月) 4경 운정취벽(雲亭翠壁) 5경 비슬선하(琵瑟仙霞) 6경 아금어화(牙琴漁花) 7경 마천조람(馬川朝嵐) 8경은 봉산석조(鳳山夕照)이다.

 

현재 영백정 앞에는 4대강 사업으로 잘 다듬어진 강변과 풍부한 강물이 흐르고 밤이면 강정보의 야경이 조성되어 영백정의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옛날과 다르게 정자를 찾는 사람과 글을 남기는 방문자가 없다는 것이다.

 

때마침 다사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 2019816일에 영백정(暎碧亭)의 오랜 빗장을 풀고, 50년의 긴 침묵을 깨우는 행사 “2019 영백정 문산월주 시낭송회를 개최하였다. 816일에 날을 잡은 것은 음력으로 716일로 기망(旣望)일이기 때문이다. 문산월주(汶山月柱)는 문산 영벽정에서 조망되는 낙동강 물결에 비치는 달그림자를 말한다.

 

시낭송회는 다사축제추진위원회가 주최하고 다사소상인회가 주관한 행사이다. 다사소상인회는 오랫동안 다사어르신들에게 매년 효 잔치를 주관하였던 사려가 깊은 단체이다.

시시각각 바뀌어 가는 21세기에는 수많은 전통이 사라져가고 있다. 이번 시낭송회는 사라져 가는 영백정의 전통을 우리 손으로 다시 잇는 의미 깊은 행사이며, 많은 분이 시낭송회에 참석하셔서 400년 전통의 멋을 경험하는 소중한 시간이였다.

 

다사황토사연구회 회장 최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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