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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월광과 낙동강풍이 빚은 하향주

비슬신문 2021. 8. 18.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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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월광과 낙동강풍이 빚은 하향주

 

                                                                                                          강성환 대구광역시의원

 

일전에 위스키의 고향(Whisky Country)’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가 세계여행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적이 있다. 13,000년 전 이스라엘 하이파 나투프(Natuf, Haifa, Israel)지역에 살던 한 여인이 귀리, 보리 등으로 인류 최초로 맥주(麥酒)를 빚었다. 스코틀랜드의 수도사들이 십자군전쟁에 참전했다 중동의 양조기술을 훔쳐 귀향한 후 영국북부 스페이(Spey) 강물, 야생화 헤더(Heather)로 된 이탄(泥炭)의 매캐한 냄새, 자생보리를 싹틔워 맥주를 만들었다. 이를 다시 40~43도까지 증류시켜 생명수(aqua vita)인 위스키(Whisky)를 만들었다. 오늘날 전 세계의 93%의 싱글몰트위스키(single molt whisky)를 공급하고 있는 곳이 바로 스코틀랜드 스페이 사이드(Spey Side, Scotland)이다.

 

그런데 대구지역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위스키를 넘어서는 풍미를 지닌 천하명주(天下銘酒)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애써 무시해왔다. 어릴 때 할머니들이 자주 말씀하시던 동네 점바치 용한 줄 모른다.”는 것처럼 대구에 살면서도 바로 달성군 유가면에서 특제양조기법으로 한정 생산하는 하향주(荷香酒)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연꽃 향기가 난다고 연꽃 하(), 향기 향()자와 술 주()로 칭하고 있으나, 연꽃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인동초(忍冬草), 약쑥(藥艾) 및 감국(甘菊)으로 아로마(aroma)를 풍기게 한다.

 

제조방법은 고사찰용(故事撮要, 1554), 규곤시의방(閨壼是議方, 1670), 산림경제(山林經濟, 1710), 규합총서(閨閤叢書, 1809), 양주방(釀酒方, 1837) 등에 기록되어 있다. 이들 기록을 종합해 공통분모를 추린다면 i) 멥쌀로 백설기를 만들고, 이를 떡판구멍에 통과시켜 자루떡(柄餠)’ 혹은 구멍떡(空餠)’을 만들어 이를 밑밥으로 한다. 물론, 송편을 만들어서 밑밥으로 할 수도 있다. ii) 여기에다가 찹쌀고두밥으로 덧()밥 혹은 덮밥으로 한다. iii) 찹쌀고두밥을 찔 때 인동초, 감국 혹은 약쑥 등을 솥 밑에 깔고 찜을 들인다. 이렇게 2중 발효 혹은 2중 숙성하는 것은 음식정성의 미학이다. 한편으로는 선인들의 골계(滑稽, Comic)가 숨어있다. , ‘자루떡이나 구멍떡은 남녀음양조화를 음식에 가미했으며, 멥쌀과 찹쌀로 덧방치기 한 우스개 정성을 다함으로써 보다 숙성된 풍미를 갖게 한다.

 

한편, 비슬산은부처님의 산(佛山, Foshan)’이란 뜻에서 중국음을 향찰로 음역해 신라시대에 포산(包山, Foshan)’이라고 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비슬산(琵瑟山)이란 인도 행복의 여신(Happiness Goddess)비슈누(Vishnu)’ 신라향찰로 음역해 붙일 만큼 서방정토(西方淨土)였다. 이곳에 827년 통일신라 도성(道成) 스님이 비슬산 기슭에 유가사(瑜伽寺)를 창건했고 고려 말 일연(一然) 스님이 삼국유사(三國遺事)를 구상했던 곳이기도 하다. 사찰에서 술을 빚는 일은 고려시대 숭불정책으로 이루어져 억불숭유 정책으로 선회한 조선시대에 와서 박탈당하게 된다. 하지만 500년간의 비슬월광(琵瑟月光)과 낙동강풍(洛東江風)으로 술맛은 극에 달했다. 또한, 유가양조비법(瑜伽釀造秘法)이 조선시대에 넘어와 16세기 이후 서서히 지역민가에 전파되었다.

 

이때에 스님들이 숭유억불에 대한 감정을 승화시켜 음식의 풍미를 더하는 은근한 골계를 녹여내었다. 오늘날 의미로 말하면 재료 마련에서 꽈배기(twisting)’를 더했고, 절차에서 덮치기(recovering)’ 스텝을 밟게 했다. 이렇게 해서 술 빚는 방법을 민가에 전해주면서 오늘날 표현으로 빅 엿을 먹였다.”는 너털웃음을 속으로 웃었을 것이며 후손에게 전승되는 바람에 인간미가 술맛을 더욱 풍미하게 했다. 당시는 스님들이 술을 마신다고 세간에서 수군거리자 누룩을 넣어서 만든 차(曲茶)를 마신다고 했으며, 선비들은 맥차(麥茶)를 몰라서 곡차(穀茶)로 표현한다고 비아냥거렸다. 최근에도 스님들은 육식고기를 도끼나물(斧菜)이라 하고, 각종 물고기를 낚시나물(釣菜) 혹은 칼나물(刀菜)이라 한다. 일종의 골계(滑稽)로 음식에 풍미를 더하고자 하는 화이트유머(white humor)로 받아준다면 우리 지역의 명주 달성 하향주의 풍미를 더욱 오래도록 기억하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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