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명으로 건립된 유일한 신도비!
양평공 이철견 선생, 옥포에서 만나다
현풍 스포츠파크 내 인물 동산에 가면 달성을 빛낸 26명의 위인이 있다. 그 중에 한 분이 이철견 선생이다. 선생이 어떤 인물이었기에 달성을 빛낸 위인으로 자리매김했을까.
이철견 선생(1435~1496)의 자는 연부(鍊夫)다. 신라 6촌장 중 수석 촌장인 알천 양산촌의 촌장 표암공 알평(謁平)의 56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승(昇)으로 이조참판을 증직 받았고, 아버지는 연손(延孫)으로 공조참판을 지냈으며, 어머니는 파평윤씨로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번(璠)의 딸로 세조 비(妃)인 정희왕후의 언니다. 오성 대감으로 잘 알려진 백사 이항복선생의 종고조부며 시호(諡號)는 월성군 양평공(月城君 襄平公)이다.
선생은 약관 18세에 헌능직(獻陵直)을 시작으로 44년간 훈련도정, 평안도 절도사, 동지중추사, 경기도 관찰사, 호조, 형조판서, 평안도 관찰사, 좌참찬, 경상도 관찰사, 대사헌, 한성부판윤, 좌찬성, 판의금부사, 도총관 등 관직생활을 하면서 단종에서 연산군까지 다섯 임금을 모셨다.
힘이 남달리 세고, 재주 또한 범상치 않았으며 성품이 너그럽고 후덕하여 이웃과 일가 벗의 길흉사까지 마음을 다하여 챙겼다. 문무(文武)를 겸비한 그는 투철한 공정성과 충성심을 발휘하여 민생을 안정케 하여 임금의 신임을 얻고 백성들로부터 추존 받았다.
연산군 2년에 병환이 나 임금이 어의(御醫)를 보내 약을 하사하였으나 그 보람도 없이 1496년, 62세의 나이에 돌아가셨다. 지금의 관악구 봉천동에 안장되었으며 나라로부터 사패지(賜牌地. 논밭)를 하사받고 불천위(不遷位:영구히 사당에 신위를 모시는 것)로 모시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 오성대감은 선생의 고증손자로 이조판서, 좌의정, 영의정을 두루 거친 조선조 4대 명신(名臣) 중의 한 명이자 청백리로 이름나 있다. 인목대비의 폐위가 부당한 폐륜임을 강조하다 삭탈관직 되어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된다.
당시, 3족을 멸하는 악법으로 철퇴가 내려져 그의 일가친척들은 고향을 버리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뿔뿔이 흩어지는데 영동과 영남지방에 근거하며 많이 살게 된다. 인조 때 복권되었으나 많은 세월이 흘러 조상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1828년, 당시 경기도 시흥(오늘날 봉천동)에 있던 선생의 묘를 군위 인각문중에서 찾게 된다.
하지만 1970년 묘역이 주거지로 변하고 서울로 편입되면서 달성군 옥포로 이장하였는데 택지개발로 묘는 다시 논공읍 남리로 이장하고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신도비만 옥포읍에 그대로 남아있다. 매년 시월 첫째 일요일을 정일로 하고 시향(時享)을 봉행하고 있다.
선생의 영정은 영남지역의 중간지점인 경남 밀양시 단장면 국전리에 있다. 그곳에 부조묘우(不祧廟:불천위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를 건립하고 제각(祭閣)을 건립하여 양평공의 위패와 정경부인 윤씨와 평창 이씨도 같이 봉안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매년 음력 3월 18일에 향사를 지낸다.
신도비는 중국에서 천자나 제후가 큰 업적을 남기고 죽었거나 혹은 살아서 덕정을 베푼 것을 기려 세웠다. 조선의 임금으로는 태조의 건원릉신도비(建元陵神道碑)와 세종의 영릉신도비(英陵神道碑)가 있으며, 정2품 이상의 관직을 거쳤거나 업적과 학문이 뛰어나 후세의 사표(師表)가 된다고 여겨지는 경우 신도비를 세워 기리도록 하였다. 선생의 신도비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왕명으로 공의 묘소가 있는 봉천동 입구에 건립했다.
비의 받침돌은 화강석이고 몸돌과 머릿돌은 하나의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 머릿돌은 지붕모양으로 조선전기 신도비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연산군 3년에 세운 이 비의 비문은 홍귀달이 짓고 안침이 글씨를 썼다. ‘양평이공신도비명(襄平李公神道碑銘)’이라 이름 짓고, 본문에는 그의 업적을 열거하였다.
이사회에서 만난 종친회 이경식 회장은 “전통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우리의 소중한 문화는 지켰으면 좋겠다. 특히 제례문화가 많이 바뀌고 있다. 바로 윗대 조상들을 기리는 제사도 사라지고 있는 마당에 400여 년 전의 조상을 섬기는 것이 쉽지는 않다. 훌륭한 조상을 가진 후손으로 잘 살고 있으니 길이길이 조상을 잘 받들고 그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는 후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종친회 이재명 사무처장은 대구공업대학교, 가야대학교를 설립하신 이경희 선생의 장남으로 현재 대구보건고등학교 이사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우남희 기자(Woo795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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