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도동서원
서원향사에서 준례(遵禮)가 가장 완벽한 도동서원
춘향(春享)으로 유교문화를 계승하다
도동서원에서는 지난 10일(음력 2월 19일), 중정일(中丁日)을 맞아 유림들을 제관으로 모시고 향사(享祀)를 지냈다. 향교에서는 초정일(初丁日)에 향사를 지내지만 서원에서는 음력으로 2월과 8월 중정일에 향사를 지낸다.
코로나가 있기 전까지는 1박 2일로 진행되었으나 코로나로, 그리고 올해 계묘년(癸卯年) 2월 춘향례(春享禮)는 코로나가 끝났지만 동재(東齋)인 거인재(居人齋)의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당일 행사로 진행하였다.
향사의 시작은 향사 20여일 전에 망권(望圈)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망권이란 제관으로 모실 유림 20여 명을 추대 받아 사전에 전화로 참석여부를 확인한 후, 문서로 보내는 것을 말한다. 문서에는 향사 때 맡을 소임과 행사날짜 등이 적혀 있다.

중정일 당일 향사는
개좌(開座), 향사를 진행하기 위해 좌석배치를 알리고 상읍(相揖)한다
알묘(謁廟), 향사를 알리기 위해 사당을 참배하는 것을 말한다.
분정(分定), 향사를 진행하는데 있어 소임 맡은 명단을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강학(講學), 소학을 낭독하고 풀이 한 뒤 틀린 곳이 있는지 가르침을 받는다.
향례(享禮), 장의(掌儀)의 진행에 따라 선생의 뜻을 기리는 의식을 진행한다.
준례(餕例), 음복하는 예법으로 이는 준례홀기에 따라 진행된다.
오찬(午餐), 전사청에서 마련한 점심을 먹는다.
자성(自省), 향사를 진행하면서 잘못된 점을 반성하는 시간이다.
파좌(罷坐), 의식을 파하는 의식으로 진행되었다.
제관들은 집에서 유복(儒服)을 입고 오거나 아니면 수월루로 들어와 준비된 장소에서 유복을 입고 주어진 시간 내에 입실한다. 입실한 제관들은 서로 통성명 하고 사당에 올라가 알묘(謁廟)로 사전에 향사를 알린다.

사당으로 오르는 계단을 오를 때 제관들은 오른 발을 먼저 내밀고 그 다음 왼발을 오른발 옆에 붙이면서 한 계단씩 오른다. 그렇게 계단을 올라야 하기 때문에 서두를 수 없고 경건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내려올 때도 마찬가지다.
분정(分定)은 앞서 말했듯 소임 맡은 명단을 기록하는 것으로 쉽게 말해 역할 분담이다. 이날은 당일 행사라 망권(望圈)을 통해 역할 분담이 되었기에 행사 주최 측에서 시간관계상 미리 써 와서 제관들에게 보여주고 다음 추계향사 때까지 중정당 현판 아래에 붙여 놓는다.

분정을 마치면 짧은 휴식시간이 주어진다. 그 시간에 전사청에서 마련한 간단한 다과(茶果)를 먹고 이내 강학에 들어간다.
오늘날의 학교가 교육기능만 있다면 조선시대 사립고등 교육기관 중의 하나인 서원은 강학기능과 제향기능이 있었다.
강당인 중정당(中正堂)에서 한훤당선생과 삼헌관(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네 분을 모시고 여러 제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본원(本院)유사인 김희덕 유사께서 ‘소학’을 낭독하고 뜻풀이를 했다. 뜻풀이까지 마친 유사는 틀리게 읽은 곳이 있는지, 풀이가 잘못된 곳이 있는지 지적해 달라고 네 분께 청한다. 물론 다른 제관들도 이와 같은 시간을 가지나 당일 행사인지라 시간 관계상 본원 유사 한 사람의 낭독과 뜻풀이만 진행되었다. 읽는 것은 보고 읽는다고 하더라도 적지 않은 분량을 뜻풀이 하는 것이 숱한 반복, 공부 없이는 쉽지 않다며 완벽하게 했다고 다들 존경을 표했다.
강학 시간이면 늘 한훤당 선생의 자리를 빈자리로 두어 삼헌관과 같이 자리하게 하는 것은 돌아가신 선생을 산 사람처럼 생각함에서다.

강학이 끝나면 향례를 위해 사당으로 다시 올라간다. 향사의 하이라이트다. 제관들은 내삼문 앞에 일렬로 서서 장의의 집례에 따라 소임을 행한다.
사당에는 문경공 한훤당 선생과 문목공 한강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차려진 제수는 돼지고기를 비롯해 통 무, 부추, 밤, 육포, 대추, 조기, 문어, 밥을 대신한 조와 쌀 등이다.

일반적으로 가정집에서의 제사는 익힌 것을 제수로 올리는데 반해 도동서원에서는 익히지 않은 생고기로 돼지고기를 올린다. 이는 한훤당 선생이 갓잡아 피 흘리는 날것 제물의 냄새와 향기를 흠향하는 혈식군자(血食君子)로 신성하고 극진하게 최고의 정성을 다해 모신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학문과 인품이 군자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선생은 문묘(文廟)배향공신으로 문묘에는 공자를 비롯해 안자, 증자, 맹자, 자사 등 5성과 공문 10철, 송조 6현, 우리나라 18현이 모셔져 있다. 선생은 조선 5현(五賢) 중 수현(首賢)이다. 중정당 기둥의 흰 띠가 그것을 상징한다.
이들은 해마다 국가적 차원의 큰 제사를 받고, 후세들로부터 세세손손 제사를 받는 분이니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으랴. 조선 선비들의 로망이 과거급제와 문묘배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향사는 임무를 맡은 제관들에 의해 진행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소임을 맡게 된다. 분정기(諸執事分定記)를 통해 살펴보면
초헌관(初獻官), 맨 처음 술잔을 드리는 제관
아헌관(亞獻官),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제관
종헌관(終獻官), 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제관
장의(掌儀), 향사 진행을 맡아 홀기를 낭독하는 사람
축(祝), 위패의 독을 열고 닫으며 촛불을 켜고 패건을 올리고 축문을 써서 읽고 음복례와 변두(籩豆)를 거두고 망료례를 돕는 사람
찬자(贊者), 제사의 진행에 헌관 및 제 집사를 인도하는 집사
찬창(贊唱), 향사 절차와 동작을 홀기에 따라 응답하는 집사로 도동서원에서는 고지기가 하는 일이라 집사분정기에 이름을 적지 않는다.
사전(司奠), 술항아리를 맡아서 용작으로 술을 술잔을 치는 집사 전
봉향(奉香), 향함을 받들어 헌관에게 드리는 집사
봉로(奉爐), 향로를 받들어 헌관 앞에 드리는 집사
봉작(奉爵), 사준이 부어준 술잔을 받아서 헌관에게 드리는 집사
전작(奠爵), 헌관으로부터 술잔을 받아서 신위 앞에 올리는 집사
사관(司盥), 세숫물을 준비하는 집사
사세(司帨), 수건을 준비하는 집사
장찬(掌饌), 제수를 진설하는 집사다.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도동서원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다른 서원에 비해 예법을 잘 따르는 준례(遵禮)가 가장 완벽한 서원이라고 할 수 있다. 향사는 향사홀기에 따라, 음복례는 준례홀기에 따라 진행한다. 예전에는 제관 모두에게 돌아가며 순배를 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오늘날에는 5집사(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집례, 대축)에게만 순배를 하는지라 그만큼 시간은 단축되었지만 엄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건 예전과 다르지 않다.

오찬을 마친 자성(自省)의 시간에 김희덕 본원유사의 질책이 있었다. “제관들은 사전에 소임을 알고 왔다. 나름 유학하시는 분들이라 맡은 소임이 무엇인지 숙지해서 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분들이 있어 행사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한 것 같아 유감스럽다. 부산, 상주, 경산 등 멀리서 온 분들도 많다. 그런데 자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하루 참석하는 걸로 생각하고 놀러왔다면 큰 오산이다. 앞으로 어느 행사에 가시든 충분히 제 소임을 다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축(祝)의 소임을 맡은 경산 자인 향교 전교를 역임한 김상도 제관은 “도동서원의 향사는 다른 어떤 곳보다 엄격하게 잘 지켜지고 있다. 향사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전국의 서원 향사에 다 참석한 것과 맞먹을 정도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만큼 쉽게 초대받아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잘 이어갔으면 좋겠고 저도 유교문화의 맥을 이어가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역사와 전통을 지키는 일은 민족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다.
점차 사라지고 있는 유교문화를 서원이나 향교가 아니면 접하기 어렵다. 다행스럽게도 다른 서원에 비해 도동서원의 준례(遵禮)가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다. 이는 예를 실천하고자 했던 한훤당 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이어받고자하는 본원 유사들과 유림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우남희 기자(Woo795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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