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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떡과 공갈빵

비슬신문 2016. 6. 2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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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떡과 공갈빵


) 다사읍장 강 성 환


어린 시절 이웃엔 6.25전쟁에서 전사하신 분이 많았다. 동네에서는 궂은일이나 좋은 일에 유가족 분을 모시고 희로애락을 같이 했다. 제사 음복도 유가족에게 먼저 드렸고, 지역사회에서도 유가족을 앞자리에 모시고 소개드렸고 극진하게 예우했다. 공식적인 기념행사 땐 지역유지 가운데 가장 먼저 소개했고, 만세삼창을 선창했다. 삼일절, 현충일, 6.25전쟁일, 광복절 기념행사의 인사말을 하실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국가에서도 국가기념행사 때마다 대통령 혹은 장관의 감사친서, 참석리본 및 기념품을 정중히 전달했다. 어린 마음에 참으로 존경스러운 분들이었다. “소중한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켰기 때문에 우리가 살 수 있게 하신 분들.” “임들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숭고한 애국정신을따르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2010년 이후에 참으로 호국보훈이 유난히 시끄럽다. 5.18민주화 기념행사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두고 합창은 되고 제창은 안 된다고 입씨름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2013년부터는 헌법 가치 수호는 나라사랑에서 출발한다.’고 말씀하신 법무부 장관이 국무총리가 되자, 인사혁신처에선 애국가4절과 국기에 대한 맹세를 공무원 면접시험에서 검증하기도 했다. 형식이 강한 군대가 고로 강하다는 말이다.


물론 지난 2010MB정부 때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생하자, 청와대 지하상황실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개최하였는데 김관진 국방부 장관을 제외하고 8명 모두가 병역면제자들이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MB정부를 병역면제 정부라고 언론으로부터 비아냥 받았다. 국가지도자들은 국가수호는 입으로 하는 모양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1일부터 10일까지 추모의 기간’, 611일부터 20일까지 감사의 기간‘, 621일부터 30일까지 화합과 단결의 기간으로 정했다. 국민이 참여하는 다양한 행사를 전개하여 현충일 추념식, 국가유공자 및 유족의 위로와 격려, 화합과 단결로 6.25기념과 제2연평해전을 기념한다는 보훈처의 계획이다. 여기에다가 국가보훈의 상징인 나라사랑 큰 나무배지를 달아서 국가유공자에 대한 사회적 예우풍토를 조성하는 캠페인을 전개한다고 야단이다.


1960년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간다니 어머니께서는 이스트를 넣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빵떡을 만들어 주었다. 어머니의 따스한 사랑이 마음에서 손으로 전달되는 이었다. 5학년에 들어서서는 엄마 빵보다 맛있는 간식을 하겠다고 떼써 500원을 받았다. 들뜬 마음으로 즐거운 소풍을 나섰다. 학교 앞 빵집에서 어머니가 만든 빵떡에 5배나 넘고 맛있어 보이는 빵을 500원 주고 샀다. 점심시간에 자랑스럽게 반 친구들과 나누어 먹고자 잘랐다. 맛은 있었으나 속은 비어 있었다. 속았다는 억울함과 친구들에게 창피스러웠다.


올해는 유난히 말도 많은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았다. 어릴 때를 생각하니 경제적 도움은 적었으나 가슴 따듯한 호국보훈이었다.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빵떡과 같았다. 오늘날 말로만 요란스럽게 하는 호국보훈은 정작 유가족들에게 가슴 아프게 하는 것 같다. 겉만 화려하고 정작 속이 빈 공갈빵과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조국을 위해 산화하신 국립묘지 무연고 호국영령 분묘에 대한민국 전몰군경유족회에서 주관하는 한송이 헌화 국민 기부운동에 동참하여 일천 원으로 추모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호국 보훈의 달 유월에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빵떡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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