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경제

하빈(河濱), 사파리를 꿈꾼다

비슬신문 2015. 9. 11.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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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빈(河濱), 사파리를 꿈꾼다

 

초등학교에 입학 후 첫 여름방학을 맞았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 서구 내당동 이모 댁에 갔다. 아이스케끼도 더위를 식혀주지 못했다. 한낮에는 아스팔트 도로도 엿가락처럼 녹아내렸다. 이모는 땀을 뻘뻘 흘리는 내가 안쓰러운지 공원으로 데려갔다. 난생처음 가본 달성공원이었다.

코끼리와 곰, 호랑이, 원숭이, 사자, 물개며 꼬리를 화려하게 펼치는 공작새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더위도 잊은 채 내내 동물원 주위를 맴돌았다. 마법의 나라에 온 것처럼 모든 게 신기하기만 했다.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도 창경원(지금의 창경궁) 동물원에 갔다. 달성공원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규모가 컸다. 기린과 하마와 캥거루며, 내 몸집보다 몇 배나 큰 뱀에 놀라기도 했다. 처음 타본 기차에서 느낀 전율처럼 동물원은 또 다른 스릴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후 뛰놀았던 동산에 동물들이 나타나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곤 했는데 꿈이었다.

2005년 여름, 아내와 함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여행 중 성루시아 생태공원을 다녀왔다. 더반에서 버스로 4시간 거리에 있는 습지공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길이가 남북으로 80km나 되고 면적도 2,345나 된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는 노랑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꽃의 향연에 매료되었다. 지척에는 타조의 무리가 노닐고 밀림에는 새들의 합창이 끊이질 않았다. 넓은 산호초가 펼쳐진 하구에는 오백 여종의 조류와 습생식물, 열대 우림 식물과 천이백 여종의 곤충류, 포유류 등이 서식하는 동식물의 낙원이었다. 아직도 사파리에서 보냈던 기쁨이 생생하기만 하다.

몇 해 전, 서울대공원에서 여가를 즐긴 적이 있었다. 울창한 숲속에는 370여 종에 이르는 희귀한 동식물의 서식지라 한다. 형형색색의 장미꽃밭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성루시아 공원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놀이동산과 캠프장, 치유의 숲 등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어 맘에 들었다. 이런 사파리가 우리 고장에는 없다는 아쉬움과 이곳 주민에게는 축복의 공간 같아 부러움이 교차했다.

최근 달성공원 내에 있던 동물원 이전 예정지를 두고 유치전이 눈길을 끈다. 달성군과 수성구가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형국이다. 수성구는 접근성을 강조하고 대구스타디움, 야구장, 미술관 등 주변의 관광 인프라를 장점으로 꼽는다. 반면 달성군이 이전 예정지로 선정한 하빈면은 대구에서는 보기 드문 청정지역으로 생태환경을 강조한다. 우리 속에 가둬 보여주는 동물원이 아니라 사파리로써 최적의 조건이라는 점이다. 또한, 박팽년 등 사육신의 넋이 모셔진 육신사(六臣祠)는 충절의 고장으로 학생들의 체험교육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근 강정보는 4대강 유역에 설치된 대표적인 명품보로 명성이 높다. 강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담은 디아크는 최초의 물 문화공간으로 전국적인 명소가 되었다. 낙동강과 금호강이 합류하는 지점엔 생태환경의 보고(寶庫)인 달성습지가 살아 숨쉰다. 화원 사문진 주막촌과 나루터에는 옛 향수를 그리워하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음을 자랑거리로 내세우고 있다.

나는 다큐멘터리 프로 중 동물의 왕국을 즐겨보는 편이다. 대초원에는 언제나 강자와 약자의 쫓고 쫓기는 사투가 벌어진다. 약자인 누는 항상 강자의 눈빛에서 멀어져야만 한다. 때론 무리에 적지 않은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도강을 감행하는 투지에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침입자로부터 새끼를 지켜내고자 목숨을 거는 어미새의 숭고한 사랑도 본다.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생의 지혜에 감탄한다.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에도 나름 질서와 사랑과 더불어 살아가는 종()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름답다.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아귀다툼은 동물 세계보다 더 치열하고 악랄하다. 이 프로에 매료되는 이유이다.

대구교도소 이전을 추진한 주민들과 자리를 함께한 적이 있었다. 모든 지역에서 외면했던 교도소 이전을 받아들인 이유를 듣고 내심 놀랐다. 1970년대 까지만 해도 가장 부농인 면이었는데 지금은 가장 낙후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자체가 원전이나 쓰레기매립장을 유치할 때처럼 지역발전을 위한 지원을 기대한 것이라 했다. 이웃이 한둘 떠나가고 100년 전통의 모교가 폐교 위기에 몰리면서 위기임을 실감했다는 것이다. 지역이 쇠락한 것이 자신들의 탓이라 여겼다. “자식에게 제삿밥이라도 얻어먹으려면 지금의 희생쯤은 충분히 감내하겠노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 나라가 부국이 되기 위해서는 지역 간의 균형발전이 선행될 때만이 가능하다. 어디 그게 국가에만 해당하랴. 지역도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하면 서로 갈등만 깊어진다. 국제도시를 지향하는 대구시도 미래를 내다보고 동물원 조성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 가두어 두는 동물원 조성은 오히려 시민들로부터 예산 낭비와 동물 학대라는 비난을 면치 못함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동물원 이전에 마냥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대구시의 처신도 문제지만, 의원까지 나서서 마녀 사냥하듯 한곳으로 몰아붙이는 태도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부지 결정을 위한 공정한 기준과 유치를 희망하는 지역주민의 의지까지 종합적으로 검토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낙후된 지역발전을 염원하는 하빈 면민의 희망을 상상해 본다. 머지않아 낙동강이 굽이쳐 휘돌아가는 하빈(河濱)의 광활한 구릉지가 사파리가 될 것이다. 그곳에는 자유롭게 뛰노는 동물이 있고 울창한 숲에는 청정한 기운이 있지 않을까. 쾌적한 환경에서 여가를 즐기려하는 시민을 맞이하는 그들의 입가에 웃음이 번지리라. 마치 사파리의 주인이 된 것처럼.

 

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장(달성복지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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