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 대한 소고(小考)
요즘만큼 건강에 관한 대중적 관심이 폭넓게 퍼진 적은 없어 보인다. 방송사와 각종 매체마다 앞다투어 방영하거나 지면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풍요 속에 빈곤이랄까. 성인병에 대한 예방과 치료에 대한 다양한 강좌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오히려 혼란스럽기만 하다. 마치 박람회장에 깔끔하게 진열된 상품처럼 비슷비슷해 선택하기조차 어렵다.
그동안 건강만큼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동료들도 내게 건강비결이 뭐냐고 물어오곤 했다. 몸살조차도 하루만 지나면 언제 아팠는지도 모를 정도로 훌훌 털고 일어났다. 아직 한 번도 입원경력이 없을 만큼 병원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주위에서는 특이한 체질이라며 부러워했다.
명주실 몇 겹을 촘촘하게 꼰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마당으로 향했다. 입을 앙다문 채 발버둥 쳤지만 불가항력이었다. 겁에 질린 나는 울먹이며 연신 도리질만 해댔다. 흔들리는 앞니를 그대로 두면 도깨비 뿔 같은 덧니가 생긴다고 잔뜩 겁을 주었다. 명주실로 이를 단단하게 묶는가 싶더니 순간 머리를 내려치자 못생긴 이 하나가 쑥 빠져나왔다. 어머니는 큰소리로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주께 새 이 도고.(다오)” 하더니 뽑은 이를 냅다 지붕 위로 던졌다. 이가 빠진 자리는 삼베옷이 살갗에 닿는 까칠한 느낌을 주었다. 몇 주 동안 말조차 어눌했고 아이들도 앞니 빠진 늙은이라 놀려댔지만, 덧니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자 몸도 마음도 한없이 가벼웠다.
건장마가 오락가락하는 사이 집 안 구석구석에는 습기가 점령군처럼 덮친다. 피부에 닿는 것마다 눅눅해져 아침부터 기분은 하향곡선을 그린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 할까. 며칠 전부터 입안에서 이상 징후가 나타나더니 윗니 하나가 흔들린다. 잇몸도 발갛게 부어올라 신경이 곤두선다. 아내는 미련하게 병을 키운다며 병원 가기를 재촉한다. 가끔 통증이 있긴 했지만,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에 병원 가기를 미적미적해온 터다. 치과에 들어서자 잘 정돈된 벽면에는 치아의 중요성을 알리는 문구와 그림이 시각을 자극한다. 대기하는 동안 잔잔한 경음악 사이로 흘러나오는 기계음에 신경이 더 날카로워진다. 흰 마스크를 한 간호사가 여닫는 문틈으로 번지는 알코올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냉탕에 몸을 담근 것처럼 전신이 경직된다.
“입을 크게 벌리세요. 어휴~ 잇몸이 많이 상했네. X-Ray부터 찍어 본 후 치료를 시작합시다.” 여의사의 부드러운 말씨에도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아주 작은 원형의 톱날과 날카로운 금속성 기구가 쉼 없이 입안을 들락거린다. 순간적인 통증에 안면 근육이 가늘게 떨린다. 진료를 시작한 지 한 달 후, 치료를 끝낸 의사는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만 갸우뚱거린다. 느닷없이 소견서를 써 줄 테니 큰 병원으로 가보란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엄습했다. 혹시 몹쓸 병이 아닐까 하는 예감이 전신을 휘감는다. 마취된 상태처럼 정신이 몽롱해진다.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말에 온갖 생각이 실타래처럼 뒤엉킨다. 대구에서 명성이 자자한 J 치과를 찾아갔다. 소견서를 본 원장은 대수롭지 않은 듯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부터 시킨다. 긴장의 끈을 놓자 굳었던 안면 근육이 서서히 풀린다. 진료를 마친 원장은 사진을 보여주며 향후 치료 방법까지 자상하게 설명한다. 간호사도 평소 칫솔질 잘못으로 신경이 엉켜 생긴 부작용이라며 칫솔질 방법까지 알려준다. 어릴 적 앞니를 뺐던 그때처럼 홀가분한 기분이다.
대부분 사람은 사십 대 후반이면 노화가 진행된다고 한다. 나이가 든다는 건 신체 기능이 떨어진다는 의미이다. 육신은 일터에서 멀어지게 되고 정신도 처마 끝 풍경처럼 이리저리 흔들린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함께했던 모든 것이 나로부터 하나씩 멀어지거나 사라져 간다. 기억의 저장고도 마찬가지다. 빈집의 담벼락이 서서히 무너지듯 정신마저도 적신호가 울린다. 면식이 있는데도 도무지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총기(聰氣)도 모래 위에 쓴 글씨처럼 점점 희미해져 간다.
얼마 전부터 시력조차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시력을 보호해준다는 신약과 기능식품을 복용해도 차도가 없다. 눈앞에 물체가 아지랑이에 가려진 것처럼 흐릿하게 보일 때도 있다. 일 년 만에 안경을 두 번이나 바꿔 써야 할 만큼 상태가 심각하다. 즐겨 읽던 책도 손에서 점점 멀어져간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는 그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종합검진 결과 곳곳에 부실함이 드러났다. 각 기능을 체크하는 수치가 정상범위를 벗어나 있다. 3년 전만 해도 건강상태는 양호했다. 매일 새벽마다 등산한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의사에게 등산을 재개하겠다고 하자 위험천만한 운동이라고 만류한다. 육체도 정신도 지쳐있으니 걷기운동과 마음부터 다스리란다. 운동광인 친구는 글쓰기가 스트레스 주범이라며 당장 집어치우고 체력단련부터 하자고 한다. 고개가 주억거려지지만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건강을 외면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음이다. 건강에 대한 문외한이 겪는 고민인가 싶었다.
선풍기를 고정하고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건강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을 맑게 가꾸어라. 맑은 마음이 영혼과 육신을 강건하게 한다.” 저자인 이장규 박사의 말이다. 혹, 내 몸과 마음도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키위 새가 되어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겠다.
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장(달성복지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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