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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茶馬古都)를 걷다

비슬신문 2015. 9. 2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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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茶馬古都)를 걷다

 

윈난 성() 여강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깊어서인지 인적이 드물었다. 차창에 비친 이국의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에도 연신 하품이 밀려들었다. 내일은 호도협과 차마고도 트레킹이니 체력을 비축해 두라는 가이드의 말이 아스라이 들려온다. 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청도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잠을 청했다.

중국을 알려면 백번을 다녀가야 한다는데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가는 곳마다 소수민족의 독특한 문화를 경험한 적이 있다. 오늘은 어떤 것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을지 자못 설렌다. 협곡으로 접어드는 산기슭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통가옥들은 8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마을을 굽이돌아 흐르는 맑은 물과 주위에 펼쳐진 원시림은 한 폭의 아름다운 산수화다. 소형버스가 가파른 낭떠러지 길을 오를 때는 숨조차 내 쉴 수가 없을 정도로 오금이 저려온다. 가속페달만 있고 브레이크는 아예 없는지 정신없이 질주한다. 모두 사색이 되어 굳어있다. 가이드는 이런 모습을 즐기려는 듯 농담을 건넨다. 중국에서 운전하려면 적어도 3개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며 너스레를 떤다. 어디서나 눌러대는 빵빵대’, 자유자재로 끼어들기를 감행하는 들이대’, 차선과 신호를 무시해도 놀라지 말아야 하는 놀래대라 한다.

산 중턱쯤인데도 아래로는 천 길 낭떠러지다. 내려다보는 순간 현기증이 인다. 위로는 옥룡설산(5,596m)과 합파설산(5,395m)의 장대한 모습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두 산이 마주 보는 사이로 흐르는 강물에서 에너지가 솟구친다. 그랜드캐니언이 중후한 남성미를 풍긴다면, 이곳 협곡은 혈기 왕성한 청춘이랄까. 거칠게 바위를 휘감아 돌며 물보라를 일으킨다. 강물조차 대륙의 기질을 닮았을까 너무 도도하다. 희뿌연 황토색 물은 가까이 다가서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것만 같다.

까마득한 절벽 길을 걸을 때는 전신은 진땀으로 범벅되고 숨도 턱까지 차올랐다. 끝이 보이지 않는 천 길 낭떠러지에 길을 내고 살아가는 고산족의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동수단이 말()과 두 다리가 전부였을 그들은 생존을 위해 이 험한 길을 수 없이 걸어 다니지 않았을까. 비단길보다 200년이나 앞선 교역길이라 해도 식량 부족으로 삶은 궁핍할 수밖에 없었을 것만 같다. 이토록 척박한 환경에 뿌리를 내렸는지, 궁금증만 더해진다. 그 순간, 나는 왜 위험천만한 차마고도를 오르는지. 왜 힘들게 걷고 있는지, 자문해 보지만 텅 빈 머리는 묵묵부답이다.

설산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긴 소매 옷에 바람막이 옷까지 껴입어도 한기가 엄습한다. 오를수록 설산은 자태가 뚜렷하다. 구름에 휩싸인 설산은 장대한 모습을 잠깐 드러내다가도 어느 한순간 자취를 감추고 만다. 운무가 발아래로 스멀스멀 기어들더니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만든다. 모두가 불안을 느꼈을까 일행은 약속이나 한 듯 앞 뒷사람의 손을 맞잡는다. 이런 상황에서 앞장선다는 게 왠지 불안하다. 목덜미에 서늘함이 가시지 않는다. 서로를 의지하며 조심스럽게 걷는 동안 불안도 운무도 사라졌다. 내 손을 잡았던 그녀의 얼굴에도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동행의 소중함을 안 것일까. 하이파이브로 자축한다.

얼마나 올랐을까.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꼬리를 문 행렬은 협곡과 설산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얼마 전 전시실에서 눈여겨봤던 유화 한 점이 떠올랐다. 그 그림은 투박한 색채 위에 가마득한 길을 걷는 구도자가 그려져 있었다. 마치 차마고도를 오르는 우리의 모습과 흡사했다. 대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하고 작아지는 내 모습이다. 여행은 혼자가 아니라 세상과의 소통이자 조화라는 생각이 언뜻 스쳐 지나간다. 잠시 전, 누군가가 힘들어할 때 손을 맞잡고 하나가 된 것도 소통이자 어울림이었으리라.

세찬 바람이 산허리를 훑고 지나간 자리에 싸늘한 기운이 내려앉는다. 차가움이 목덜미를 파고든다. 5월인지 11월인지 가늠할 수 없는 날씨다. 그때 운무에 감춰진 옥룡설산은 파장이 일어나듯 구름이 걷히면서 속살을 드러낸다. 시야에는 눈부신 순백의 세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전신이 녹아들 것만 같은 황홀경에 감탄사만 연발한다. 저 설산처럼 내 삶도 하얗게 표백되어 빛날 수 있기를 바라며 성호를 긋는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전망대에 올라 주변을 조망해 본다. 머리 위로는 뭉게구름이, 발아래는 하늘을 향해 치솟은 삼나무 군락이 멋지다. 힘들게 걸었던 차마고도를 내려다본다. 두려움에 전신이 진땀에 젖었던 길이다. 끝없이 펼쳐진 그 길이 우리의 인생 여정인 양 느껴진다. 누군들 힘겹고 굴곡진 삶이 없었을까. 그러나 지나고 보면 모든 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듯이 이 여정도 그러하리라.

이곳에서 생활하는 원주민을 만났다. 그들의 입가에는 반달 같은 웃음이 걸려있다. 선한 눈매를 가진 한 여인이 가슴을 드러낸 채 갓난아기에게 젖을 물린다. 신은 이곳에 선악과(善惡果) 대신 설산과 협곡과 초원을 선물로 내린 모양이다. 드넓은 초원에는 야크가 무리 지어 풀을 뜯는다. 한 여인이 말을 몰아 초원을 달린다. 그들의 삶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 냈기에 더 값진 것이리라. 누구에게나 해말간 웃음을 주는 그들이 부럽다. 이제야 그들이 이곳에 머무는지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이 여정이 끝나는 날, 그들을 닮은 나를 그려본다.

 

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장(달성복지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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