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쓰는 일기
시원한 바람에도 오후의 햇볕이 따갑다.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벼들이 막바지 일광욕을 즐긴다. 올핸 유난히 더위와 가뭄이 심했는데도 용케 이겨내고 결실을 채비한다. 토실해진 대추와 도토리며, 밤송이도 은은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온 산야도 추석 기운으로 넉넉하다.
그 옛날 태평성대 함은 그해 농사가 풍년이었을 때였다고 한다. 알곡으로 곳간을 채운 백성의 넉넉한 마음이 군주의 마음과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추석인사라도 나눌 겸 쉼터에 들렀다. 누구네 아들은 돈을 많이 벌었고 누구네는 도토리를 몇 말 줍고 참깨 몇 섬을 수확해 재미를 톡톡하게 봤다는 소식이 오간다. 그때 누군가가 들녘을 바라보며 한마디를 내뱉는다. “농사가 잘되면 뭐 하노. 수매도 줄고 가격도 제자리 곰밴데….” 풍요 속의 빈곤일까. 정부의 이중곡가제 폐지로 수매물량이 주는데다 쌀 가격마저 내리는 데 대한 애타는 농심이다. 대풍(大豊)이 무색해 보인다.
모처럼 휴일 나들이에 나섰다. 경사진 도랑을 끼고 펼쳐진 다랑논에는 허수아비가 무료한 표정으로 보초를 서고 있다. 허수아비 허리춤에 달아둔 셀로판지가 바람결에 바르르 떤다. 참새 무리는 허수아비의 정체를 아는 듯 미동도 않는다. 약아진 참새 떼가 얄밉다. 모퉁이 길을 돌아서자 한 무리의 참새 떼가 날아오른다. 허수아비가 아님을 아는 모양이다. 한때는 멸종 위기에 처했던 새이다. 멀리 날지 않고 이내 인근 논배미에 내려앉는다. 이대로 두면 벼는 쭉정이만 남을 것이다. 아마 농부의 마음도 쭉정이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한 해 동안 수고의 대가가 빈손이 되었을 때 허탈함을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망연자실한 농부의 얼굴을 떠올리니 괜히 미안해진다. 안타까운 마음에 ‘훠이’ 하고 소리를 질러 본다.
집을 지을 때 화단과 뒤뜰에 과일나무를 심고 텃밭을 일궜다. 감, 대추, 홍매화, 사과, 석류, 보리수와 텃밭엔 고추, 오이, 가지와 토마토를 심었다. 결실 때까지 어린애를 돌보듯 정성을 다해 가꾸지만, 진딧물과 깍지벌레, 두더지와 참새, 까치, 직박구리가 호시탐탐 노린다. 서툰 농군이라 자주 당하긴 했어도 시간을 거듭할수록 방어요령도 생겼다. 발효퇴비로 과목(果木)의 체질을 강하게 하고 씨앗도 병해에 강한 품종으로 교체했다.EM(Effective Micro-organisms) 발효액으로 면역력을 길러준다. 고추 잎에 흰 반점이 생기거나 새순이 활착하지 않으면 병충해가 왔다는 신호다. 즉시 살균제를 살포하여 퇴치작전을 편다. 수확 때가 되면 손길은 더욱 분주해 진다. 제일 먼저 수확하는 보리수가 빨갛게 익을 때쯤이면 촘촘한 망사를 덮어 직박구리의 접근을 아예 차단한다.
사람이 머물러야 할 곳에 이미 동식물이 점령해 버렸다. 논밭 여기저기에도 잡목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지은 농사를 갈무리할 때쯤이면 새, 고라니, 두더지, 멧돼지 무리는 떼강도로 돌변한다. 허탈해하는 촌로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다. 환경론자들은 생태계 보존을 위해 야생조수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보전만이 능사가 아닐진대, 짐승 대신 사람이 굶어야 한다면 누가 동의하랴. 가득이나 노령화되어 가는 농촌이 존폐의 위기에 놓였는데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게 답답할 뿐이다.
퇴비만으로 농사짓는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 된 지 오래다. 비싼 퇴비로는 수지타산을 맞출 수도 없거니와 농약 없이는 텃밭조차 가꾸기 어렵다. 그동안 선호했던 저독성 농약으로는 해충을 방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안다. 착색제를 사용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기도 하고 독성이 강한 농약을 사용해야할지를 두고 고민하게 된다. 자칫 농사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불안감에 흔들리고 내 가족의 먹거리이기에 주저하게 된다. 비료나 농약을 사용해야 하는 농민과 친환경 농산물을 찾는 소비자간 틈새가 커질 수밖에 없다. 농민은 이래저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가을이었다. 심은 지 삼 년만에 사과가 열렸다.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며 정성을 다해 길렀다. 약한 가지는 버팀목을 세워 고정했다. 아침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땀 흘린 보람이랄까. 첫 수확을 맞는 농부의 심정을 알 것만 같았다. 붉게 익어가는 사과를 바라볼 때마다 이 맛에 농사짓는 거라며 흥얼거렸다. 어느 날, 사과를 수확하려다 깜짝 놀랐다. 사과 속에 땅벌이 진을 치고 있었다. 사과 꼭지쯤에 작은 구멍을 내고 들락거리며 당도가 높은 과즙만 노략질하고 있었다. 껍질을 그대로 두어 주인을 감쪽같이 속인 것이다. 농약을 살포하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되었다. 결혼반지를 도난당한 그때처럼 생각할수록 아깝기도 했지만, 미물에 당했다는 게 더 약이 올랐다.
텔레비전에 산골에서 생활하는 명사의 일상이 소개되고 있었다. 그는 자연에서 나는 모든 것을 미물과 나누고 있었다. 알곡을 전부 수확하지 않고 일부를 그대로 남겨 둔다고 했다. 남겨둔 감은 까치가 먹고 고구마는 땅강아지, 굼벵이, 들쥐가 먹는다고 했다. 열매는 산새들이 먹고 무 잎은 고라니 몫이란다. 무엇이든 ‘나눠 먹자’로 마음을 비우니 편하다고 했다. 움켜지기만 했던 시절이 부끄럽다는 그의 고백을 농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가 궁금하다.
며칠 후면 잘 익은 대추, 감, 고구마를 추수해야 하지만 조금은 혼란스럽다. 남겨 두어야 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이다. 하지만 아직은 짐승이나 미물과 공존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태생적으로 농민의 아들이어서일까.
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장(달성복지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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