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만난 배롱나무
도동서원에서 솔례마을 방향으로 오솔길을 한참 걷다 보니 야트막한 산자락에 아늑한 이양서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비에 젖어서일까. 곱기만 하던 단풍은 어느새 속절없이 떨어져 비탈 여기저기에 누워있다. 무성하던 잎을 몽땅 떨군 채 나무들은 밀려드는 한기에 가늘게 떨고 있다. 멀리 고목이 된 배롱나무도 잿빛 하늘의 무게를 이고 서원을 지키고 있다.
올여름 내내 붉은 꽃을 피워 올렸던 배롱나무다. 바빠진 발걸음을 따라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뒤따른다. 쪽문을 열고 들어서자 화사한 꽃도 무성하던 잎도 남김없이 털어낸 채 나를 반긴다. 알몸을 하고서도 부끄러움이 없는 모양이다. 육체미 선수인 양 미끈한 근육질 몸매를 자랑한다. 당당한 기품은 좌중을 압도할 만큼 매력적이다. 살아온 연륜만큼 무언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있음이다.
지난해 여름 백일홍의 아름다움에 반해 이곳 이양서원을 찾았다. 솔례(率禮)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는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서원 마당에는 백 년을 넘겼을 것만 같은 배롱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다. 담장 위로 주홍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한 아름다움에 보는 이들은 모두 감탄사를 쏟아냈다. 서원 지킴이 노인은 곽씨 문중의 덕행과 학문이 붉은 꽃으로 핀 것이라 했다. 그보다는 망우당 홍의장군의 얼이 이곳에서 붉게 피어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응시하고 있노라니 황홀경에 빠져든 듯하고 선경에 선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여름이면 배롱나무는 백 일 내내 몸을 태워 잉걸불이 된다. 여태껏 폭염 속에서 시뻘건 불꽃을 피우는 초능력을 본 적이 없다. 가공할만한 에너지를 핏빛으로 뿜어낸다. 강렬한 태양에 온몸을 태우고 또 태워야 한다. 하얗게 타들어 가는 줄기는 불순물이 없는 백탄이 된다. 단단하게 몸을 담금질하지 않으면 알몸으로 매서운 칼바람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추울수록 윤기 나는 하얀 피부가 돋보인다. 자작나무와 닮았다고 하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똑같은 흰 피부이긴 하지만 자작나무와는 삶의 궤도를 달리한다. 겉만 번드레한 자작나무는 양보할 줄 모르는 삶 때문에 무시로 부닥친다. 나이테가 커질수록 상처도 아문 옹이로 변한다. 그 상처를 부끄러워하지도 감추지도 않는다. 오래된 자작나무일수록 옹이는 유난히 크고 짙어 노인의 검버섯처럼 선명하다. 자작나무 숲 속에는 싸늘하게 변한 상흔이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다.
겨울을 나는 수많은 나무는 꽃과 잎을 지상에 내려놓고 나면 거친 피부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웅장한 느티나무도 황금빛으로 유혹하는 은행나무도 겨울이면 어쩔 수 없이 거친 몰골을 드러내고 만다. 반면 배롱나무는 겨울에도 아름다움을 표출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내공을 쌓아 갈수록 사방팔방으로 유연하게 몸을 휜다. 허공을 미학적으로 가르는 다양한 몸짓은 행위 예술가를 연상케 한다. 뜨거운 열기를 참아내며 피나는 노력으로 다듬어 온 것이리라. 나신의 배롱나무는 누구나 한 번쯤 품어보고 싶을 정도로 요염한 자태를 뽐낸다.
어릴 적 배롱나무를 백일홍이라 불렀다. 무희의 붉은 입술처럼 부드러운 꽃이었다. 백일 동안의 현란한 몸짓이 장관이다. 공간이 있다 해서 꽃가지를 함부로 피우지 않는다. 스스로 조형하는 완벽한 기술사다. 한 폭의 그림을 그릴 때 여백을 두는 화가처럼 배롱나무도 꽃가지 사이에 간격을 두어 절제된 관능미를 뽐낸다. 때와 장소와 관계없이 어떤 곳에 있어도 잘 어울릴 것만 같다. 호젓한 호수가 정자를 지키며 환한 웃음을 지어도 좋다. 산사의 풍경소리에 붉은 영혼을 실어 보낸다 해도 멋질 것이다.
발가벗은 배롱나무에 다가가 몸매를 훔친다. 작은 옹이조차 윤기 나는 피부로 감싸고 있다. 어떤 잔가지가 휘어지고 또 다른 가지는 틀어졌지만 서로 엉킴이 없다. 배롱나무의 기품은 도포를 잘 다려 입은 채 선비를 닮았다. 겨울철 배롱나무는 백자의 품성을 빼닮았다. 도공이 만든 불가마 속에서 눈부신 빛과 열기에 용해되어 태어난 백자처럼, 배롱나무도 여름 내내 뜨거운 열기를 송두리째 흡입하였기에 표피조차 은은하게 빛난다. 소박하면서도 단단함을 지녔고 곡선과 여백은 바라볼수록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자신의 모든 걸 숨김없이 드러내지만, 결코 뽐내거나 과신하지 않는 절제된 삶이 매력적이다.
배롱나무에서 침묵을 본다. 대지의 싸늘한 기운이 말초신경을 마비시키는 아픔에도 묵언으로 수행한다. 수도자의 기도처럼 흐트러짐도 없다. 겨우내 들숨은 땅속에 깊이 박아둔 말초신경까지 닿게 하고 날숨은 가지 끝에다 뽑아 올릴 것이다. 인고의 시간이 지나 봄이 오면 천천히 수액을 흡입하지만,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수많은 봄꽃이 지고 나서야 연록의 잎을 틔우고 꽃망울을 터트린다. 가지마다 붉은 광기를 쉼 없이 토해 내는 그 광경이 기다려진다.
배롱나무 앞에 서면 한없이 낮아지는 자신을 본다. 쉽게 상처받고 시련에 흔들린 삶이 부끄럽다. 추위 속에도 단전에다 뜨거워진 생명체를 쌓아 두는 내공을 가진 배롱나무, 너를 닮고 싶다.
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회장(달성복지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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