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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씨와 손 씨가 부럽네

비슬신문 2015. 12. 1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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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씨와 손 씨가 부럽네


안 동지, 대업을 꼭 이루어 대한제국의 건재함을 만천하에 알려주시오.” 비장한 표정의 단지회(斷指會) 요원이 서른 살 청년 안중근의 손을 꽉 맞잡았다. 안중근의 강렬한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에서 죽음을 각오한 결연한 의지가 보였다. 저토록 아름다운 동지애가 이 세상에 존재할까 싶어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신분이나 나이를 초월해 오로지 나라의 독립에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사람, 그들은 서로를 동지라 불렀다.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내달렸던 동지란 이름에는 숭고함이 배어났다. 참으로 좋은 말이다. 한때 공산주의자들이 동지, 동무란 용어를 즐겨 써왔고 지금도 북한 정권에서 동지라는 용어를 쓴다고 한다. 내 기억에는 이미 사라졌지만 아무리 좋은 뜻이 담겨있어도 이념적 색채가 묻어나면 폐기되는 모양이다. 종종 정치집단에서 사용하지만 특수 부호처럼 흔적만 있을 뿐이다.

한때 내 곁에도 좋은 분이 있었다. 사회적 지휘가 있음에도 늘 겸손했고 성품이 온화했다. 인품이 남달라 지역사회로부터 존경을 받아왔다. 이미 고인이 되긴 했지만, 틈틈이 만나 뵙고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곤 했다. 30년 터울이지만 다름을 인정해 줄 만큼 서로 배려하고 존중해 주는 사이였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 분의 인자한 모습이 떠오른다. 인생의 스승이자 동지였다.

얼마 전, 내 안에 존재하는 동지를 봤다. 생김새로 보나 기능이나 역할로 보나 전혀 다름에도 동지라는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하나는 성루를 지키는 파수꾼이고 또 하나는 행동대원이다. 족보로 보나 지역으로 보나 연고가 전혀 없어 보인다. 감각 담당인 안() 씨와 운동 전담인 손() 씨는 공통분모라곤 없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내지만 화이부동(和而不同) 하는 관계가 가문의 내력인 양 이어오고 있었다.

안 씨의 이동 거리는 반경 1cm도 안 되지만 사물을 탐색하는 탁월한 감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사방에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을 순식간에 포착하기도 한다. 도시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백화점 진열장에 화려한 상품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신데렐라를 꿈꾸는 자유를 주기도 한다. 다만 안 씨의 자의적 판단이 종종 화근을 부른다. 금방 본 것도 보지 않았다고 우기는 변덕쟁이 심보를 가졌다. 망루를 지켜야 할 파수꾼의 본분을 저버리기 일쑤다. 피곤하다며 졸기도 하고 불리하다 싶으면 두 눈을 질끈 감기도 한다. 내키지 않으면 망루의 기능을 아예 가동시키지 않을 만큼 무례하다.

손 씨의 면면은 안 씨와는 다른 점이 많다. 그는 종일 일에 시달려도 전혀 싫은 기색을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는 소홀하지만, 상대에게는 성심성의를 다한다. 주인이 잠에서 깨어나면 곧장 세수를 시키고 머릿결을 손질하여 기분을 가볍게 한다. 때로는 냉수 한 컵으로 갈증을 씻어준다. 그의 부지런함은 미련할 정도로 소문이 자자하다. 기쁜 일에는 박수갈채를 보내고 슬픈 일에는 어깨를 토닥여 주기도 한다. 때론 주인을 잘못 만나 모든 허물을 뒤집어쓰고 쇠고랑을 차는 곤욕도 치러야 하는 손 씨다.

그들의 관계가 아주 썰렁해질 때도 있다. 손 씨가 김장하느라 마늘을 까고 양파를 썰면 빈둥빈둥 놀기만 하던 안 씨는 눈은 맵다고 짜증을 내기도 한다. 가을걷이로 손바닥이 갈라지는 고통을 겪는데도 피곤하다며 눈꺼풀을 내리깔고 졸기를 서슴지 않는다. 오로지 나만 편하면 된다는 심보는 놀부보다 한 수 위다. 더러는 둘이 합작해 큰일을 해내도 안 씨와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군더더기 없이 완벽하게 일을 끝내면 손끝이 야물다 하고 물건을 잘 고르면 안목이 높다고 추켜세운다. 안목은 높게 평가하지만, 재주를 낮게 평가한 것은 손 씨의 처지에서 보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아니 억울하기 짝이 없다. 훌륭한 예술가와 명장이란 호칭은 눈과 손의 합작품이지만 안 씨만 주목받는다.

그렇다고 손 씨의 면면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경사스런 일에는 깃발을 흔들며 손을 맞잡고 기쁨을 나눈다. 감격할 때는 부둥켜안거나 하나가 되었다는 증표는 손의 몫이다. 달랠 때는 어루만져주고 격려할 때는 쓰다듬어 준다. 위로할 때는 토닥여주고 분노할 때는 두 손을 불끈 쥐고 응징하는 행위는 손만이 해낼 수 있는 특권이다. 잘못을 저지르고 용서를 구하는 것도, 승리한 자가 두 손을 번쩍 치켜들어 환호하는 것도 손의 몫이다. 하지만 손은 신분이나 성별, 직업에 따라 대우가 극명하게 달라진다. 지휘자는 지휘봉을 잡듯이 펜을 들고 사인만 하는 부류도 있고 평생 힘든 농기구를 만져야 하는 농부도 있다. 손톱조차 보배처럼 가꾸는 사람도 있다. 나처럼 밤늦도록 컴퓨터 자판을 토닥토닥 두드리는 못난 손도 있다. 사람의 팔자를 가늠하는 척도가 손이 아닌가 싶다.

안 씨와 손 씨의 호흡이 애정 깊은 부부처럼 척척 맞아 떨어질 때도 있다. 과일을 깎는 동안은 한눈팔지 않는다. 설계도를 그리거나 화장을 할 때도 단짝을 이룬다. 퍼즐을 맞출 때나 보석을 가공할 때는 혼연일체가 된다. 눈이 손을 이끄는 건지 손이 눈을 거드는 건지 알 수 없다. 힘든 일일수록 일심동체가 된다. 그들의 각별한 동지애가 부럽다.

삶에 고락을 같이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사람들이 돌아섰다. 쌓아온 신의를 헌신짝 버리듯 팽개쳤다. 명예, , 사람까지 몽땅 잃고 말았다. 그 후로는 함부로 손을 내밀기가 쉽지 않았다. 때로는 내미는 손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혜안이 모자라 주저하고 망설이다 동지 한 명 두지 못한 내 처지나 나라의 처지가 엇비슷해 보인다. 정치판이 요동치고 노동계의 파업으로 경제까지 흔들린다. 비가 그치면 날씨까지 더 을씨년스러울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눈과 손처럼 호흡을 척척 맞추어 갈 존재가 부럽다.

 

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장(달성복지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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