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언제 끝날까?
세계 각국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1월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금년 내로 집단면역을 형성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전망을 내 놓았다. 이미 지난해 6월부터 인류는 장기간 동안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공존할 수밖에 없으며 ‘일종의 풍토병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다. 일전의 CNBC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바이오기업 모더나의 스테판 반셀 CEO도 JP모건 보건의료 콘퍼런스의 패널로 참석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이 바이러스와 함께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인류 역사상 바이러스와 세균에 의한 감염병의 출현은 사람들에게 언제나 공포였으며 문명을 뒤흔들어 놓았다.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정복 전쟁과 무역, 교통기술의 발달로 사람과 자원의 이동이 늘어날수록 새로운 감염병의 출현 가능성은 높아졌고 적절한 대처나 조치를 하지 못한 집단은 언제나 생존을 위협받는 공포와 마주하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우리나라의 건국신화가 실린 삼국유사(三國遺事)에 “환웅이 3천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마루 신단수 아래에 신시를 열고 세상을 다스리는데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자 100일간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을 먹었으며, 호랑이는 도망치고, 곰은 21일 만에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忌三七日,熊得女身).”는 기록이 있다. 이는 흑사병(黑死病)으로 검게 썩어가는 모습을 곰으로, 검붉은 반점을 호랑이로 표현했으며, 쑥은 벼룩과 쥐의 병원균매체소독용 연막약제, 마늘은 항생제로 복용했던 것이다.
몽고초원 유목민의 풍토병이었던 흑사병의 제1차 대유행은 541년부터 542년에 실크로드를 타고 로마제국에 유입되었고, 당시 유스티니아우스는 오늘날 조류독감 방역처럼 환자를 살아있는 상태로 바다에 던져버리는 ‘살처분(殺處分)’으로 틀어막았다. 이후 1346년 몽고제국의 유럽정복정예군과 로마제국의 제네바군대가 흑해 카파에서 일전이 벌어졌는데 이것이 제2차 유행의 시작점이다. 몽골군이 흑사병 시신들을 투석기로 제네바군영에 날려보냈다. 이를 계기로 1347년부터 1351년까지 유럽인구의 30%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제3차 대유행은 19세기 중반부터 중국과 인도를 기점으로 시작하여 대규모 식민지를 보유했던 유럽인들까지 위협했다. 전염병이 휩쓴 고립된 도시에서 재앙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모습을 묘사하며 인간의 선택과 실존을 말한 알베르 까뮈의 장편소설 ‘페스트’는 바로 이 흑사병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질병이 세계적으로 대유행한다는 것은 제반여건이 조성되어 있다는 의미다. 즉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i) 생물체 생존환경에서 먹이사슬의 균형이 파괴되었다. ii) 천적이 사라졌기에 확산할 제반여건이 조성되었다. iii) 금상첨화로 전염매체까지 왕성해서 전파속도에 가속화가 생겼다는 뜻이다. 한편,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흑사병은 i) 비단거래가 왕성한 실크로드가 구축되었고, ii) 몽골제국과 로마제국 정복의 길이 서로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은 iii) 세계화라는 무문대도(無門大道)를 이용해서 “중국의 꿈”을 싣고 단숨에 지구촌이 팬데믹으로 치달았다. 이에는 선진국의 지도자들이 감염병을 정치적인 방법론으로 방역하는 바람에 ‘불에 기름을 붓는 꼴(可油之形)’이 되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일본의 아베 총리도 끝내 분신자결의 결과만을 초래했다. 많은 지구촌의 사람들은 코로나 팬데믹(corona pandemic)보다도 가짜정보의 인포데믹(info-demic)에 시달렸고, 정치가 만든 재앙인 폴리데믹(poli-demic)으로 경제적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이러한 환경적인 여건을 인지하지 못한 채 백신접종만으로는 코로나19의 확산기세를 일시적으로 꺾을 수는 있어도 완전한 퇴치의 끝을 볼 수 없다. 백신을 접종하고도 6~8주 정도의 면역형성기간이 필요한데, 백신접종을 했다고 마스크도 쓰지 않고 방역수칙을 따르지 않는다면 확산만 반복할 뿐 질환사멸은 사막의 신기루처럼 보인다.
따라서 코로나19가 언제 끝날 것인가는 우리의 행동에 좌우된다. 무엇보다도 i) 선진국 지도자들이 해왔던 정치기반 방역은 지양되고, ii) 과학(의학)기반 방역을 지향해 온 국민이 합심하고 단결해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대로 가서는 퇴치는 고사하고 풍토병으로 남게 된다. 대구시가 지난 2020년의 3․28시민운동을 다시 점화한다면 우리 대구만은 코로나19의 퇴치와 가장 먼저 코로나 청정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올 한해만 더 참고 솔선수범 한다면 늦어도 2022년에는 정상적인 삶을 찾을 수 있음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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