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문화

강을 바라보며 세월을 낚다-이노정에서 만난 두 선생-

비슬신문 2022. 11. 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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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바라보며 세월을 낚다

-이노정에서 만난 두 선생-

 

잠시 일상을 내려놓고 길을 떠났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이런 저런 생각들을 날려버린다. 구지면사무소를 지나 1km정도 달리다가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리면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마주하고 있는 아담한 건물을 만나게 된다. 바로 이노정(二老亭)으로 오늘의 목적지다.

우리나라 건물은 일반적으로 풍수지리상 앞에는 강이고 뒤로는 산이 자리한 곳에 들어선다. 이노정은 풍수지리의 조건에 충실하게 지어진 건물로 앞으로는 낙동강, 뒤로는 성암이라는 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이노정 개양문

우리나라의 정자(亭子)나 정사(精舍)는 자연 경관을 감상하면서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주변 경관이 좋은 곳에 아담하게 짓는다. 정자는 주로 여름철에 많이 이용하고 정사는 방을 두어 겨울철에도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노정은 정자라고 하지만 대청마루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방이 있으니 정사(精舍)의 성격을 띠고 있다. 허나 정자(亭子)면 어떻고 정사(精舍)면 또 어떤가. 어떻게 두 늙은이를 뜻하는 단어가 건물의 이름에 들어있는지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그렇다. 두 늙은이란 문묘에 배향된 한훤당 김굉필 선생과 일두 정여창 선생을 이르는 말이다. 이노정이라는 현판뿐만 아니라 제일강산(第一江山)이라는 현판도 걸려있다. 강과 산이 있어 경치도 제일이지만 성리학의 대가인 두 분 선생을 일컫는 말이 아닐까 싶다.

 

두 선생이 이곳에 오게 된 것은 무오사화(戊午史禍)로 인해서다. 화를 입은 후 이곳으로 내려와 지내며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기면서 후학들에게 학문을 강학했던 곳이다.

무오사화(戊午史禍)는 갑자사화(甲子士禍), 기묘사화(己卯士禍), 을사사화(乙巳士禍)와 달리 사림파인 사관 김일손이 쓴 사초(史草)로 인해 발발되었기에 한자로 (사화)라고 한다. 성종실록의 편찬을 총지휘했던 훈구파인 좌의정 이극돈은 김일손이 사초에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서술이 있는 것을 보고 김일손에게 수정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한다. 이 일로 이극돈은 김일손에게 원한을 가지는데, 때마침 성종의 사초에서 김일손의 스승인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보게 된다. 이극돈은 조의제문이 항우에게 살해되었던 초회왕의 사례를 들어 세조의 계유정난을 비판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이극돈은 이 일을 계기로 사림파의 스승 격이라고 할 수 있는 김종직과 엮어서 사림파를 숙청하려 생각했고, 사초에 실린 <조의제문>을 유자광한테 전한다. 유자광도 함양의 학사루에 걸어둔 자신의 시를 함양군수로 부임한 김종직이 떼어내어 불살라 버린 일로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던지라 연산군에게 고해바친다. 이 일로 김일손이 잡혀 들어가게 되면서 무오사화라는 회오리바람이 불게 된다.

 

이 건물은 1885(고종 22), 영남 유림에서 두 분을 추모하기 위해 고쳐 지었고, 1904(고종 41)에도 고쳤다. 건물 규모는 앞면 4, 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독특한 형태로 대구시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었다. 또한, 마루 천장에는 우물 정()자 모양의 통풍구를 두어 산바람, 강바람을 자연스럽게 이용하고 있어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이노정의 개양문(開陽門)을 열고 들어가면 주련에 두 편의 시가 적혀있다.

바깥기둥 주련(柱聯)에는 김굉필 선생이 소학을 읽고 쓴 칠언절구의 독소학(讀小學)’이라는 시다.

 

 

業文猶未識天機(업문유미식천기)

글을 읽어도 아직 천기를 알지 못하니

 

小學書中悟昨非(소학서중오작비)

소학 속에서 어제의 잘못을 깨달았다

 

從此盡心供子職(종차진심공자식)

이제부터 마음을 다해 자식의 직분을 다하려고 하니

 

區區何用羨輕肥(구구하용선경비)

구차스럽게 어떻게 잘 살기를 바라겠는가.

 

안쪽 기둥 주련에는 한훤당 선생과 막역한 사이인 정여창선생이 섬진강 어귀에 악양정을 짓고 생활하면서 쓴 칠언절구의 유악양(遊岳陽)이란 시가 있다.

 

風蒲獵獵弄輕柔(풍포렵렵농경유)

부들에 바람 살랑살랑 나부끼고

 

四月花開麥已秋(사월화개맥이추)

사월의 화개 땅은 이미 보리 벨 때라

 

看盡頭流千萬疊(간진두유천만첩)

두류산(지리산) 천만 봉을 다 보았는데

 

孤舟又下大江流(고주우하대강유)

한 척 배는 또 아래 큰 강으로 흘러간다.

 

시대가 발달하여 자가운전자가 많아 이동이 자유로운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도 좋지만 가끔은 외진 곳에 있는 이노정과 같은 문화유적지를 찾아 선현들의 흔적을 느끼며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강과 산이 만나는 곳, 하늘은 높고 인적마저 끊긴 이곳에서 무념무상의 세계로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우남희 기자(Woo795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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