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엿집에서 작은 꽃가마를 보다.
영여를 아십니까?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말이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오늘날, 시대가 변하면서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 중에 하나가 장례문화다. 해마다 여의도 면적의 땅이 묘지로 바뀌고 있다. 국토의 1%에 해당하며 죽은 자가 차지하는 땅의 비율이 산 자의 1/3에 해당한다고 한다. 장례문화가 바뀌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선사시대에는 시신을 고인돌, 돌널무덤(석관묘. 돌상자무덤), 돌덧널무덤(석곽묘), 돌방무덤(석실분), 옹관묘 등을 만들어 넣었고 역사시대에는 능, 원, 총, 분, 묘를 만들어 장례를 치렀다. 이러한 무덤은 매장(埋葬)문화에 해당한다.
오늘날, 화장(火葬)문화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지만 아직도 매장문화가 적지 않다. 매장하는데 있어서도 시신을 운반하는 기구인 상여를 이용하여 장지까지 가는가 하면, 상여 없이 운구차를 이용해 장지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오늘날에는 후자가 주를 이룬다. 왜냐하면 상여를 이용하면 적지 않은 인력이 동원되어야 하고 상여 만드는 사람이 거의 상여(喪輿)와 망자의 혼백을 운반하는 영여(靈輿)로 나누어진다. 영여는 영혼이 육신보다 우선시하여 상여 앞에 간다. 이 둘을 통칭하여 상여라고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시신을 운반하는 것만을 이른다.
영여는 지역에 따라 앵여, 작은 꽃가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상여나 영여는 마을마다 공동기금으로 마련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별도로 공간을 마련하여 보관했다. 상엿집이 사라진지 오래라 남아 있는 곳이 거의 없다. 하지만 온전하게 남아있지는 않지만 옥포읍 본리 1리에 상여집이 남아있다. 필자가 찾아간 상엿집에는 상여는 없고 영여와 상여를 만드는데 드는 나무 몇 개만 남아있었다.
마을 주민인 천근용(65)씨는 “여기에 있는 상엿집은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고 하니 아마 7~80년은 더 된 것 같다. 이곳은 예전에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그야말로 외딴 곳이었지만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공장이 들어서면서 외딴 곳이라고 할 수 없다. 어렸을 때 무서워 이 근처를 혼자서는 지나가지 못했고,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 할 때면 숨도 안 쉬고 달려 이 앞을 지나갔다. 빈 페트병이나 스티로폼 등을 버려 관리가 안 되고 있지만 사라지는 우리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이런 건물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우남희 기자(Woo795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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