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과 소통
대구달성경찰서 청문감사인권관실 경사 이승준
국어사전적 정의로 ‘갑질“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상대방에게 오만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하며 제멋대로 구는 짓’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통칭해서 쓰여지나 세세하게 우리사회에 갑질은 색깔을 바꾸어 널리 퍼져 있는 것이 사실이고, ”갑질한다! 갑질당했다.“ 는 표현으로 우리의 삶에 자연스레 스며든 명사가 되었다.
갑질과 소통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여 보려 한다.
인간은 누구나 한 인격체로 온전하게 대우받을 권리, 즉 인권이 존재한다. 이는 누구로부터 무시당하거나 무시할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사람들이 살면서 갑질을 만들었고 그 갑질에 온갖 문제가 불거진다. 인권과 갑질은 어떤 관계이며, 그 실체가 무엇인지 생각하게끔 하는 요즘이다.
오랜 역사를 거슬러 우리사회는 유교문화가 많은 일상의 생활에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였고 아직도 유교문화는 곳곳에 존재한다. 이러한 유교문화는 초,중,고등교육을 받으며 살아 온 지금의 6070세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가령, 자연스레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거나 나이가 어려도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어렵게 생각하기에 깍듯이 예의를 갖추고 대하고, 의견을 제시할 때도 자신의 주장을 크게 내세우지 않기에 눈치껏 생활하는 사람을 좋은 사람, 좋은 후배라고 단정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유고문화가 옳다느니 그르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에 깊숙이 스며들어 갑질이 생겨나지는 않았을까 조심스레 접근을 하여본다.
어느정도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필자가 조직생활을 하면서 느끼고 체감했던 내용을 잠시 언급할 까 한다.
자신의 소신을 감추고 눈치를 보며 직장생활과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직장내에서도 꽤 많이 팽배해 있더라는 것이다. 바른말을 하고 직언을 하면 주류세계에서 멀어진다는 사고, 나와는 코드가 안맞고 대하기 버거운 상대는 가급적 부딪치려 하지 않으려는 행동에 필자 또한 직,간접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경험하였고, 직언하는 사람은 2열로 밀려나는 상황, 흔한 표현으로 왕따를 당하는 경우를 자주 보아 왔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고 한편으론 이것은 뭔가 아닌가 싶은 생각들이 내 사고를 많이 지배하였었다. 마음은 지배하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 좌절하고 만다. 어찌보면 주류세계에서 안밀려나려는 인간의 비겁한 생존본능이랄까?
학교와 가정에서 자연스레 그러한 행동과 처신이 미덕인양 교육을 받아왔기에 사회에 나와서도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보게 된다. 이처럼 주류집단만이 우위를 점하면서 조직이나 단체를 이끌어가려는 문화를 가진 사회에서는 의사소통이 제대로 될 리가 만무하다. 근본적으로 소수의 의견이 나와는 뜻이 맞지 않기에 상대를 제대로 인정하려하지 않는다. 이러한 주류문화가 팽배한 조직에서 상대적 약자는 부당한 일을 당했다 해도 속으로 감내하고 그렬려니 하고 넘어가고, 내가 질타당하는 것은 상대방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하려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이 자신의 마음에 갖혀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것이다.
보통인들은 자신이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사는 경우가 그 만큼 많다는 것일 수도 있다.
시대는 급속도로 하루가 바쁘게 바뀌어 초스피드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사회환경이 바뀌니 사람들의 사고의 패러다임 또한 자연스레 거기에 따라가기에 모든 사회현상도 고정적인 시각으로만 볼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어제는 맞았고 오늘은 맞지않는 생각과 일들이 부지기수다. 한마디로 정답이 없다. 지금의 2030세대들 소위 ‘MZ세대’는 소통에 익숙하고 실제 소통을 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주장을 과감하게 표출하면서 자란 세대라는 점에서 5060 세대들이 가졌었던 사고의 틀과는 소위 ‘코드’가 맞지 않아 때로는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내 생각이 옳으니 따라와“ 식의 일방통행이 아닌, ”내 생각은 이런데, 상대의 생각은 어떠냐“의 대등한 소통을 원한다는 것이다. 소통에는 지위고하 등의 높낮이가 있을 수 없다. 있다면 그것은 소통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대등관계가 무너지면 대화의 선은 그어지고 서로에 대한 불신과 거리감으로 대화의 벽이 생긴다. 나이나 교육정도 및 교육의 방식의 차이는 분명이 양 세대간에 존재하지만 그러한 차이를 메꾸는 것은 결국 인격을 가진 당사자들과의 대등한 위치다.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것이다.
세대 간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고 그 생각들은 소통의 매개체를 통해 올바르게 승화되어야만이 건강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언론매체를 통해 육아프로그램에서 부모가 자식과 어울려 자녀의 입장에서 자녀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을 보면서 확연히 이제는 많은 것들이 변해가고 있구나 진짜 실감한다. 그래서 요즘 젊은 세대들은 가정과 직장내에서 소통을 잘한다. 아버지, 엄마를 어렵게만 생각하지 않는다. 친구같은 엄마·아빠로 살고 싶어한다. 부모도 이것이 더 편하다.
마지막으로
갑질을 근절하고 피해발생을 사전에 막을 방법은 없는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실례로 오랜 직장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한두번 내지 많게는 수없이 상사나 동료로부터 인격적 모멸이나 직장내 괴롭힘,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오늘도 갑질로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지만 ”직장생활이 다 그렇지 뭐! 가족을 부양하려면 어쩔수 없잖아.“ 하면서 괴로워하며 혼자 자존감 없는 셀프 위안으로 고통과 스트레스를 감내하면서 살고 있는 직장인들도 많을 것이다.
내 주위에 이러한 감당하기 힘든 마음의 짐을 안고있는 직장동료나 주위사람들은 없는지 한번쯤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 그 아픈 마음을 읽어야 나 자신을 갑질로부터 지키는 것이고 타인에 대한 갑질을 하지 않게 된다.
표현은 하지 않지만 옆 사람은 계속해서 당신에게 SOS를 보낼지도 모른다.
갑질은 그 정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인간의 자존감을 짓밟고 영혼을 파괴하는 무서운 인격살인이 될 수도 있다.
갑질을 당했을 때에는 주저말고 누군가에게 얘기를 하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 인간은 의외로 강하면서도 나약한 존재이다. 갑질의 문제는 멘탈의 문제가 아닌 인권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결국 인간은 인격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갑질은 근절되어야 하고, 법과 제도를 통해서 보호받아 마땅하다.
또한 갑질 피해자는 자신이 모든 것을 안고 가려는 생각은 정말로 하여서는 안된다. 스스로 자신을 처방하려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그렇게 스스로 감당할 수위의 문제면 왜 법이 생겼으며 갑질 피해로 자신의 목숨과도 바꾸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겠는가?
갑질 피해는 쌓이고 쌓이면 몸과 정신이 극도로 피폐해진다. 전문가 상담이나 각 기관, 단체에 노크를 하여 상담을 받는 등 주위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오늘 퇴근 후 내 가족들에게 ”울 가족 오늘 하루 수고했어“, 옆에 내 소중한 동료들에게 ”수고 많았습니다. 같이 근무하고 도움받아서 늘 고맙다“고 따뜻한 말 한마디 한번 건네보면 어떨까? 처음엔 쑥스럽고 멋쩍을 수도 있다. 자주하면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또한 우리의 삶이 아닌가.
'오피니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률사례] 양육을 내팽개친 채 수년 간 외도한 부모에 대하여 부양의무가 있는지 (0) | 2023.06.16 |
---|---|
‘쿵따다~쿵딱’ 장구 소리 열정이 꽃피오는 ‘달성낙동강봉사단’ 윤이자 봉사단 단장을 만나 나눔과 봉사를 다시 만나는 시간 (0) | 2023.05.31 |
[법률사례] 남편의 불륜을 의심하여 차량에 도청기를 설치하여 남편과 상간녀의 성행위 대화를 녹음하였는데, 상간녀가 아내에게 정신적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는지 (0) | 2023.05.08 |
다중운집행사 안전관리는 이렇게! (0) | 2023.04.27 |
[법률사례]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세무조사를 받게 하겠다고 말한 경우 죄가 되는지 (0) | 2023.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