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된 당산나무
대한민국 경관 대상 최우수상 수상!!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동물이나 식물에 신이 있다고 믿었다.
단군신화에 나타나는 곰을 숭배하거나 노거수를 함부로 베지 않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마을 사람들은 노거수를 당산목으로 정해 당산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 풍년을 빌기도 하였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당산제도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다.
현풍휴게소(대구방향) 내에는 500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 물문이라고 부르는 현풍읍 성하리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날, 이곳 느티나무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마을에서는 정월 초엿새날 당산나무 아래 20여 명이 모여 제관, 축관, 그리고 일을 도와줄 지관을 뽑는다. 뽑는 방식은 한 사람 한 사람 호명하는데 천왕을 모실 사람에게는 신호가 온다고 한다. 모인 사람 중에 천왕을 모실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불참자를 호명하는데 그 사람에게 천왕이 내릴 수도 있다고 한다.
제관이 지명되면 제관은 당산나무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새끼로 금줄을 치고, 당산제를 지내는 보름날까지 자기 집에 천왕을 모신다. 모신다는 것은 삼시 세 때 밥과 술을 올리며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당산제를 지내기 전까지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궂은일(초상)뿐만 아니라 집안의 궂은일에도 참석할 수 없다. 이러한 제약으로 사람들은 제관으로 뽑히는 걸 원치 않았다.
전통은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은 있지만 지키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마을에서는 제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4일 늦춰 초엿새부터 모시던 천왕을 10일부터 모시다가 다시 하루 전에 제관을 정해 천왕을 모신다.
정월 대보름날에는 목욕재계하고 준비한 음식들을 제단 위에 진설하고 축관으로 선출된 사람이 축문을 읽으며 의식을 진행한다. 제를 지내고 막걸리를 나무 주변에 뿌리고 밤과 대추, 역시 나무 주변에 던지며 다시 한번 더 마을의 안녕을 빌면 실질적인 당산제 의식은 모두 끝이 난다. 참석자들은 제를 지낸 음식을 마을 어른들이 기다리는 마을회관으로 가져와 나누어 먹으며 덕담을 나눈다.
느티나무가 위치한 곳은 현풍휴게소이지만 1972년 구마고속도로 건설 계획이 발표될 그 당시만 하더라도 주변은 모두 밭이었다.
500년의 수령을 가진 나무인 만큼 굴곡 많은 우리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을미년 명성황후시해사건으로 구한말 최초의 의병이 일어났다. 그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사람이 문익점의 20세 손인 의산 문석봉(義山 文錫鳳) 선생이다. 그는 1851년 현풍에서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한학을 수학하였다. 1893년 병과로 급제해 경복궁 5위장에 임명되었고, 그해 충청도 공주 진잠 현감에 제수되었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소식을 듣고 국모의 원수를 갚으려고 일본군을 토벌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공주 유성 지역의 유림들과 함께 구한말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다. 당시 선생은 유성장터에서 부대를 편성한 후 회덕현을 급습해 무기를 탈취하고 공주를 향해 진격하였으나 관군의 공격에 패하여 흩어졌다. 그는 피신하고 후일을 다시 도모하면서 고향인 현풍까지 오게 되었다.
성하리 사람인 그의 손녀 (고)문관희(현. 백상천 달성문화원장의 모친) 여사가 일본의 만행이 두려워 할아버지의 관복과 벼루 등을 이 느티나무 밑에 직접 묻었으며 광복 이후 찾았다고 한다.
선생의 동상은 천안 장터에 세워져 있으며, 달성을 빛낸 위인으로 현풍 스포츠파크 인물 동산에도 세워져 있다. 하지만 정작 성하리 주민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이처럼 느티나무는 나라를 위해 힘이 되기도 하고 지역민들에게도 여러 가지 효험을 안겨주었다고 하는데 전 마을 이장이었던 박인(72. 성하리)씨는 당산나무와 관련된 효험을 말했다.
”6.25 전쟁으로 인민군이 마을에 있었지만 한 명도 화를 당하지 않았고, 월남전에 참전했던 주민들이 무탈하게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느티나무에 정성을 들였기 때문이고, 구마고속도로 공사 때 제단을 포크레인으로 옮기려고 했는데 꿈쩍도 하지 않아 음식을 차려 느티나무에 고(告)한 뒤에야 옮길 수 있었다”고 했다.
또 “아들이 어렸을 때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수술이 잘 되어 지금까지 건강한 것은 당산님(느티나무)이 돌본 것이다. 당산제를 지낸다고 흉보던 사람은 지붕에서 떨어져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박인 씨는 이러한 일들로 인해 당산나무에 신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는 30여 년을 매일 새벽 4시에 느티나무에 올라가 주변을 청소하고 관리하면서 하루를, 한 주를 시작하고 매월 초하루가 되면 떡과 과일을 준비해 가정의 안녕을 빌며, 정월 초하루와 8월 보름에는 떡과 과일은 물론이고 밥을 올린다고 했다.
지난 6일이 유월 초하루였다. 그는 그날도 과일을 준비해 당산나무에 가서 정성을 들였다.
500년 된 이 느티나무는 2014 대한민국 경관대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현풍휴게소(대구방향)를 지날 일이 있으면 한 번쯤 와서 보라. 그 오랜 세월에도 변하지 않는 푸릇푸릇한 기운으로 찾는 이들을 반길 것이다.
우남희 기자(Woo795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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