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문화

평생도(平生圖) _우보 만보(漫步)

더피플매거진 2025. 8. 1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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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도(平生圖) _우보 만보(漫步)

수필가 _ 하종혁



안동의 국학진흥원에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유교책판이 있다. 경향 각지의 여러 문중과 서원에서 맡긴 64,000매가 넘는 판각이 그것이다. 책판의 종류는 정치·철학·문학·역사·대인관계에 이르기까지 700여 종이 넘는데, 개인의 문집이 주종을 이룬다. 

조선 시대의 선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일생이 그들의 문집에 오롯이 담기게 되리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았다. 그래서 일거수일투족을 담담하게 기록했고, 그것이 사후에 문집이라는 모습으로 오늘까지 전해진 것이다.

하지만 선비라고 해서 아무나 문집을 남길 수는 없었다. 우선 거기에 수록할 만한 시문이나 경세를 위한 안목 있는 저술을 남기는 일이 녹록지 않거니와 무엇보다 향촌의 지식인들로부터 학식과 덕망을 두루 인정받아야만 문집을 제대로 간행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마침내 문집으로 빛을 보지 못할 경우가 훨씬 많으리라는 걸 가늠하면서도 그들은 자기의 삶을 묵묵히 기록했다. 후대에 전할 만한 기록을 남길 열정 하나로 갖은 어려움을 견딘 사람이 과연 얼마였을 것인가. 

신채호(1880∼1936)는 불굴의 지사였다.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긴 마당에서 일본인에게 고개를 숙일 수 없다면서 세수할 때도 목을 구부리지 않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누구는 단재丹齋가 지나치게 꼿꼿했던 탓에 주변 사람들과 쓸데없이 불화했다고 하지만, 서릿발 같은 기운이 없었다면 어찌 그 모진 세월 동안 한결같이 지조를 지켜낼 수 있었으랴. 

많은 독립운동가처럼 선생께서도 당신의 행적을 세세히 기록하지 못했는데, 추적자들에게 당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고육지책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책 한 권을 엮을 만한 문장가였던 선생이 놈들의 눈을 피하느라 마음 놓고 글조차 쓰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회고록이 범람한다. 바야흐로 나 같은 무지렁이도 마음만 내키면 어렵잖게 출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한때를 주름잡던 사람들이야 자신의 일생을 세상에다 시원하게 드러내고 싶은 욕심이 왜 없겠는가. 설령 아무리 회고록이 넘친다 한들 그 속에 장래의 본보기가 될 만한 내용이나 훗날의 잘못을 경계할 교훈이 담겼다면 무슨 허물이 되겠나. 

문제는 허장성세와 치졸한 자기변명만 늘어놓은 허접한 글이 회고록이라는 번듯한 이름을 달고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한다는 것이다. 『백범일지』에서 보듯이 투박하더라도 진솔한 기록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는 것을 진정 모르지는 않을 터인데.

이제 ‘어떤 말도 귀에 거슬리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나이’가 되고서야, ‘인간이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책을 남기는 것’이라는 움베르토 에코(1932∼2016)의 말을 실감한다. 그렇지만 변변한 글 한 편도 쓰지 못한 주제에 책을 들먹이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 시만 잘 쓰고자 한다면 잘못’이라고 한 어느 시인의 매서운 꾸짖음이 나를 서늘하게 한다. 

조선 중기의 문장가 최립崔岦(1539∼1612)은 이경윤李慶胤의 그림을 평하면서, ‘글을 쓰면 아는 것 모르는 것 죄다 드러나니 쓰려고 하지만 아직 쓰지 않은 때가 좋구나’라고 읊었는데, 나의 옹색한 속마음을 빗댄 말 같아서 씁쓸하다.

국립중앙박물관 평생도. @홈페이지 갈무리


평생도平生圖는 조선의 사대부들이 일생에 경험한 경사스러운 일을 그린 풍속화다. 그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이고 귀한 인생행로를 표현한 것인데, 이른바 ‘5복’ 가운데 내세울 만한 것을 골라 병풍으로 만든 것이다. 

그 내용은 실존 인물의 생애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그들이 이루고자 한 소망을 나타낸 것이 많다는 대목에 눈이 간다. 나의 구차한 자취로는 번듯한 글 한 편도 이루기 어려운 지경이라, 옛 선비들의 염원을 담았다는 평생도에나 기웃거리는 것이다. 

옛사람을 흉내 내어 열두 폭이나 여덟 폭의 버젓한 작품일랑 생각할 수도 없고, 여섯 폭짜리 소품일지언정 더할 나위 없으련만…. 하나 그깟 대여섯 면을 채울 그럴듯한 장면도 쉬이 떠오르지 않으니, 거 참, 평생도 병풍 하나도 내게는 과분한 것인가. 

수년 전에 백 세를 넘긴 어느 노철학자가 최근에 ‘살아보니 인생에서 열매 맺는 시기인 육십에서 구십 세가 가장 소중하더라’라고 한 말을 떠올리며 울적한 마음을 달래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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