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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에 얽힌 단상

비슬신문 2015. 9. 2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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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에 얽힌 단상

 

마른 대지에 목마름을 채워주기라도 하듯 밤새 비가 내린다. 이른 새벽 서둘러 밭으로 나갔다. 갈증을 씻어낸 고구마와 옥수수, 들깨며 호박까지 생기가 넘친다. 온갖 식물은 때를 만난 듯 온몸으로 비를 받아들이고 있다. 비를 맞으며 밭고랑을 살피는 농부가 우산을 쓴 채로 서성이는 나를 향해 우산을 접으라는 시늉을 한다. 단비를 즐기라는 몸짓 같았다.

어릴 적부터 비를 맞는 것이 싫었다. 비가 내릴 때 등교는 더욱 싫었다. 작은 체구에 책가방과 우산을 함께 든다는 게 여간 성가시지 않았다. 비닐우산에 의지한 채 좁은 논길을 걷는다는 건 곡예와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질퍽거리는 땅은 신발을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세찬 비바람을 이기지 못해 논바닥에 넘어지곤 했다. 장대비가 내리면 가방과 속옷까지도 흠뻑 젖어 들었다. 새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 짝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가급적 외출을 삼간다. 세우(細雨)든 소낙비든 비 맞는 것이 싫어서다. 궂은 날에는 일기예보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외출 때면 우산만은 꼭 챙긴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비를 피하진 않는다. 가끔 봄비에 몸을 맡기기도 한다. 화초를 가꾸거나 모종을 이식할 때는 비와 다정한 친구가 된다. 이때만큼은 빗소리가 안온하게 느껴진다. “산성비에 대머리가 될 거냐.”며 호들갑을 떠는 아내는 듬성한 머리카락마저 빠진다며 우산을 받쳐 주기도 한다.

지난해 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늦은 오후였다.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다. 강바람에 더위라도 식힐 겸 홀로 달성보()에 갔다. 간간이 불어주는 강바람에 몸을 맡기며 한참을 걸었다. 옆에서 걷는 여성 중 한 명이 눈인사를 했다. 얼떨결에 아는 척했지만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낡은 우산 하나로 쏟아지는 햇살을 가린 그녀들은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유유자적 공도교를 따라 걷고 있었다.

공도교 끝 지점에 다다랐을 무렵, 순식간에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더니 후두두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눈인사를 건넨 그녀가 우산을 펼쳐 들고 오라고 손짓 했다. 우산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지만 어색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마음 많이 상했죠.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앞으로 주님께서 더 큰 일을 시키려고 잠시 쉬게 하는 거라 생각해요. 작은 거인 힘내세요.” 따뜻한 위로에 울컥 솟는 울음을 꿀꺽 삼켰다. 나약한 모습을 보인 것 같아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있는 자신이 너무 초라했다.

세찬 강바람에 우산이 순식간에 뒤집혔다. 살대 몇 개가 맥없이 주저앉았다. 순간 아무 쓸모없는 쓰레기로 변했다. 좌절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내 존재와 너무 닮았다. 한때는 주인 곁에서 비바람을 막아주는 충복(忠僕)으로 최선을 다했으리라.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태로 존재가 없어진 그 우산에서 초췌한 내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중학교 다닐 때 일이다. 새벽부터 내리던 비는 아침까지 세차게 내렸다. 어머니는 동생들에게 우의를 입혀 주었지만 내겐 비닐우산을 주었다. 정류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옷도 가방도 흠뻑 젖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비닐우산을 마구 찢으며 좋은 우산을 사달라고 생떼를 부린 기억이 난다. 요즘 우리 사회에도 찢어진 비닐우산처럼 제구실을 못하는 부류가 허다하다. 잘못이 뭔지를 모른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메르스발병은 온 국민을 불안의 도가니에 빠트렸다. 감염을 확산시킨 삼성병원은 국민의 건강을 팽개치다 뒤늦게 기업주가 고개를 숙였다. 거짓으로 국민을 속인 보건당국도 뒤늦게 대책을 마련한다며 허둥대기만 했다. 당리당략에 빠진 정치인의 구태의연한 태도에 넌더리를 내고 있다. 가계부채 1,000조가 말해주듯 무너져가는 서민경제에 팔짱만 낀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망나니짓을 서슴지 않는 북한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땅값은 무진장 짓고 있는 고층아파트의 높이만큼이나 불안하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비닐우산을 들고 좁은 논두렁길을 걷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예견치 못한 폭풍우가 불어 닥칠 때 튼튼하고 큰 우산이 필요하듯, 우리 모두는 어떤 시련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굳건한 우산 하나쯤 가져야할 것 같다.

보슬비가 내리는 오후, 옛 친구를 만났다. 사색을 즐기는 친구를 위해 집 앞 뿌리 광장으로 갔다. 우뚝 솟은 100년 타워가 빗속에서 은은한 웃음을 보내준다. 작은 연못에는 분수와 팔각정자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빗물에 단장한 수목은 조형물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벤치에는 우산을 받쳐 든 연인들이 다정하게 밀어를 나눈다. 밝고 화사한 원색의 우산이 눈을 시리게 한다. 청춘이기에 열정조차 우산에 담아내는 것 같다. 눈길을 사로잡는 우산을 찾아본다. 은빛 바탕에 노란색 줄무늬가 돋보이는 우산이 눈에 띈다. 단아하면서도 깔끔함이 좋다. 지난해만 해도 내 삶은 어둡고 칙칙한 색깔이라 느꼈는데 지금은 밝은 원색에 마음이 끌린다. 좋은 생각이 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한다. 생각이 행동으로 바뀌고 행동이 습관이 되고 인격이 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저 풋풋한 청춘들의 생각이 우산에 그대로 녹아나 있는 것만 같다. 내 일상에도 점차 작은 변화가 감지된다. 마음에 담아 둔 불순한 생각의 찌꺼기가 빗물에 씻겨 지는 것만 같다. 우산을 접었지만 비가 싫지 않았다.

 

* 100년 타워 : 달성군 개청 100주년을 기념해 세운 26m 높이의 조형물. 군조(郡鳥)인 두루미의 힘찬 날갯짓처럼 비상하는 이미지와 군화(郡花)인 참꽃이 활짝 피어난 모습과 달성의 꿈을 받드는 다섯 개의 손을 형상화한 조형물로 새롭게 100년을 시작하는 군이 활기차게 도약하는 밝은 미래상을 담았다.

 

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장(달성복지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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