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고백

비슬신문 2015. 10. 20. 21:19
반응형

고백

 

나를 닮은 사람이 똑같은 행동거지를 보이며 길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대부분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서유기의 손오공은 종종 도술로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여럿 만들어 상대방을 혼란에 빠트렸다. 요즘 우리 문단에서도 표절사건으로 뒤숭숭하다.

학문을 자신의 스펙을 쌓는 데 그치지 않고 신분 과시용 간판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K대학교 Y 교수는 논문 표절은 소위 식자층이 저지르는 치졸한 범죄 행위로 규정했다. 태권도의 간판스타인 문대성 국회의원,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 유명강사 김미경, 개그우먼 김미화, 인기여배우 김혜수, 소설가 신경숙 이들은 모두 표절 시비에 휘말린 장본인들이다.

대학원 졸업논문을 준비할 때였다. 학기 초에 복지 분야(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지자체의 역할) 논문 초안을 제출했지만,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환경 분야 논문을 쓰기로 했다. 예비논문을 펼쳐보던 지도교수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환경에 대한 용어조차 낯설었고 쓰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날이 갈수록 초조함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현장 경험과 사례를 학문적 이론으로 체계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남은 기간은 6개월뿐 논문 심사를 통과할 자신이 없었다. 유사한 논문을 그럴싸하게 꾸미면 될 것 같았다. 그때부터 인터넷을 뒤지고 논문을 대행해 주는 곳까지 손을 내밀었으나 허사였다. 청정개발체계(CDM)와 관련된 국내 논문은 단 한 편도 없었다. 표절의 유혹이 강렬했던 만큼이나 허탈함이 전신에 녹아들었다.

교내 백일장을 앞둔 때였다. 중학교 입학 때 큰집 형님이 사준 시집(詩集)을 꺼내 읽으며 마음에 드는 몇 문장을 공책에 옮겨 놓았다. 주어진 여러 제목 중 바위를 택했고 어울릴 것 같은 문장을 슬쩍 옮겨 썼다. 발표가 있던 날 칭찬을 기대했을까 가슴이 콩닥거렸다. 선생님은 내 글을 읽게 한 다음 뭘 쓰고자 했는지를 물었다.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여드름이 숭숭하던 학창시절에는 연애편지를 써 달라는 마을친구가 많았다. “깊어 가는 가을밤, 풀벌레 노랫소리에 내 마음을 실어 보냅니다.”로 시작되는 편지글은 단연 인기가 좋았다. 서로 먼저 편지를 써달라고 졸랐다. 명사나 시인의 글을 적당히 짜깁기했으면서도 내 솜씨인 양 의기양양했었다. 여학생과 펜팔이 이루어지면 빵집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곤 했다. 하지만 자주 써주다 보니 밑천이 슬슬 드러나기 시작했다. 같은 내용을 반복해 쓸 순 없었다. 서점에서 구매한 연애의 모든 것이란 두툼한 책에서 문장을 도용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성탄카드나 편지를 쓸 때는 한두 구절 따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표절만큼은 전과가 만만치 않은 셈이다.

요즘 지역신문에 매주 한 편씩 에세이를 기고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내 삶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소재조차 선택하기 쉽지 않다. 어디 그것뿐이랴. 한 문장을 완성하느라 몇 시간을 허비할 때도 있다. 적합한 문장을 찾아 메모 노트를 몇 번씩 뒤적거리기도 한다. 아직도 아마추어 수준이라 원고지 매수를 채우는 데 급급해 한다. 신춘문예 당선작이나 명망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탐독하노라면 표절의 유혹은 솜사탕처럼 달콤하다. 금단현상을 겪은 사람은 안다. 금연 이후에 몸서리쳐지도록 온몸에 파고드는 하얀 연기의 유혹과도 같다.

명망 있는 여류 소설가 신경숙이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미사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의 문장을 자신의 소설 전설에 인용한 것을 문제 삼았다. 그녀를 상습표절작가란 딱지를 붙여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인물로 매도하고 있다. 마녀사냥 하듯 무차별적인 비난이 온당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품의 일부 구절에 표절이 있다 해서 주홍 글씨의 주인공처럼 매도하는 건 지나쳐 보인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전설을 표절 작품으로 보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작금의 잣대로라면 셰익스피어의 폭풍이나 괴테의 파우스트도 분명 표절 작품에 해당한다. 합리적 사고를 지닌 서구작가조차도 표절로 보지 않은 것은 원작과는 다른 작품세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리라. 앞뒤 전후를 따져보지 않고 절필을 운운하며 재갈을 물린다면 어떤 문인도 표절작가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지금 언론이 취하는 자세는 개그콘서트의 아파트 경비원과 다를 바 없지 않다.

표절한 것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신경숙의 어정쩡한 자세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녀가 저지른 부도덕한 행위는 어떤 경우라도 용인되어서도 안 된다. 독자나 작가나 양심을 저버린 태도에 실망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표절에 대한 잘못을 즉시 시인했더라면 자신의 소설처럼 외딴 방에 유배되는 형벌은 면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늦지 않았다. 독자와 작가 앞에서 고백성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다음엔 독자도 작가도 그녀를 포용해 주는 게 용서이다. 그녀를 외딴 방에 가둔 채 외면하는 건 직무유기이다. 과연 누가 그녀에게 절필이란 족쇄를 채울 수 있을까.

글을 쓰다 보면 묘한 감정에 빠져들 때가 있다. 가끔 희미해진 유년의 기억을 더듬어 글감을 찾기도 하지만 기억의 회로에 과거의 나는 지워지고 현재의 내가 서 있다. 슈퍼맨으로 진화하려는 욕망과 집착이 밋밋한 기억들을 지워내고 있음이다. 고백하건대 난 지금도 표절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 청정개발체제(CDM / Clean Development Mechanism)사업이란 : 쓰레기 매립장에서 분출되는 가스를 포집하여 이를 청정연료로 사용한다. 석탄 대신 청정연료를 사용하면 CO발생을 줄여나갈 수 있다. 이는 유엔 협약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이 분야에서 한국 최초(세계 4번째)로 유엔의 승인을 받았으며, 국제시장에 탄소배출권을 판매하여 연간 50~80억 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장(달성복지재단 이사장)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