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안녕
화단 가득 내려앉는 햇살이 눈부시다. 잘게 부서진 말간 빛은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이런 계절에서 하루하루를 살 수 있다면 이보다 행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모처럼 집에서 아내와 함께 화단을 손질한다. 말라버린 꽃대와 잔디 사이에 난 잡초를 제거하고 있을 때다. ‘하이~안녕하세요.’ 한 옥타브 높은, 그러나 약간은 서툰 발음으로 아내와 인사를 나눈다. 안녕~ 아내도 웃음 띤 얼굴로 화답한다. 그들은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이었다. 그들의 환한 미소에 나도 덩달아 인사를 한다. 이국땅에서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아내와는 늘 웃음을 나눈다. 때론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하고 잘 살라고 토닥여 주기도 한다. 가끔은 삶은 고구마와 감자, 과일과 담근 김치까지 건네준다. 아내를 부르는 호칭도 제각각이다. 언니, 고모, 이모라 부른다. 허물없이 지내다 보니 그들도 스스럼없이 다가선다.
한국에 오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부푼 꿈을 가지고 온 그들이다. 교직을 버리고 온 사람도 있고 브로커의 마수에 걸려 거금을 주고 온 사람도 있었다. 이곳 시골까지 오게 된 연유도 각가지이다. 좋은 직장이 있다는 꾐에 빠진 사람도 있고 값싼 집세 때문이거나 먼저 온 친구를 찾아온 것이라 한다. 필리핀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베트남과 방글라데시,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사람들로 그중에는 부부와 자매도 있었다. 꿈은 하나인데 삶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요즘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게 있다. 심심찮게 보도되는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가정에 대한 문제가 집중 조명되고 있다. 불법체류의 약점이 불법고용으로 이어져 임금착취와 감금이라는 비극을 부르고 있다. 열악한 노동환경에 심하게 다치거나 병고에 시달리고 있어도 진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장면이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메운다. 다문화 가정에서도 언어와 풍습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가정불화로 이어지긴 마찬가지다. 그들을 목을 옥죄는 각종 규제가 점점 음지로 숨어들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젠 정부 차원에서 살펴봐야 할 때다.
30년 전 미국으로 돈 벌러 떠난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농사일로는 더는 살기 힘들다며 가족을 남겨둔 채 생면부지의 땅으로 떠났다.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불법체류자 신분이라 한곳에 정착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일한만큼 돈은 벌지만, 가족과 친구가 보고 싶어 명절 때면 눈물을 펑펑 쏟기도 한다고 했다. 노동착취나 인종차별이 없는 곳에서도 저리도 서러운데 하물며 이들이 겪는 고통은 어떠하랴.
최근 프랑스가 인종차별 문제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이민자 자녀를 서자 취급한 대가가 만만치 않았다. 직장을 제한하고 임금을 차별한 것이 화근이었다. 우리 사회도 민족주의와 순혈주의란 고착된 사고를 버리지 않는 한 더 큰 문제가 야기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일이 없도록 정부와 사회가 나서야 할 때다. 이들이 겪는 안타까운 사연이 전파를 탈 때마다 마음이 아려온다.
지난해 N 읍에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다. 123가정에서 외국인 여성과 결혼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에게 한글과 한국의 미풍양속과 정서를 이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었다. 몇 차례에 걸쳐 사회복지사가 방문면담을 통해 설득했지만 82가구만이 참여에 동의했다. 주로 시부모의 반대가 심했다. 외출을 싫어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등 이유도 갖가지였다. 속내는 가출과 같은 또 다른 부작용을 우려하여 반대했다고 한다. 스스로 이웃과 사회를 향해 높은 담장을 쌓고 있었다. 정작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할 사람은 이주 여성들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주 노동자의 찌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리얼하게 묘사한 「코끼리」란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주인공인 ‘아카스’는 초등학생이다. 피부색 때문에 동급생들로부터 폭행을 당한다. 그 폭행은 단순히 신체에만 가해지지 않는다. 언어폭력은 어린 가슴을 멍들게 한다. 자신의 피부를 하얗게 하려고 표백제로 세수한다. 학교라는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비극이다. 남북이 총칼로 대치하고 있는 철책선이나 비무장지대보다 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아이가 ‘아카스’라 생각하니 명치끝에 달린 울음주머니가 울컥한다. 도시도 농촌도 길거리에 나서면 외국인을 쉽게 만나게 된다. 그들은 이미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된 셈이다. 외국인 근로자 없이는 기피업종의 기업은 가동할 수 없을 정도라 한다. 차별이라는 낡은 사고와 민족주의가 빚은 또 하나의 참극이 서서히 고개 들고 있지는 않은지. 나 또한 아스카 앞에선 방관자가 아닌가.
팩에 든 과일즙을 들고 나와 몸에 좋은 음식이라는 아내의 설명에 그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가깝게 지내는 이웃인 양 다정해 보인다. “여보, 우리 동네 사는 외국인들 초청해 식사 한번 안 할래?” 아내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다. 그동안 나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호감만을 가지고 있지만은 않았다. 도둑은 아닐까. 혹은 강도로 돌변하지 않을까 싶어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말 따로 행동 따로였다. 걱정만 했을 뿐 그들을 위해 해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진 않은가. 내가 행복하려면 먼저 내 주변이 행복해야 한다고 했다. 마음을 나누고 한 끼의 식사가 이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었으면 나 또한 행복하겠지. ‘하이’ 윤기 나는 그들의 인사말이 잔디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며칠 후면 싱그러운 웃음이 집안 가득하겠지.
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장(달성복지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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