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보문사 기도순례
새벽 4시에 기상하여 구지 법화사에 도착하니 5시 30분 이었다. 11월의 첫날이라 날씨가 매우 쌀쌀하였다. 신도 45명을 태운 버스는 1분의 지체도 없이 정확히 출발했다. 시간만큼은 면도날보다 더 예리하게 지키시는 주지스님의 교육된 신도들의 학습 효과였다. 오늘의 기도 순례지는 강화도 보문사이다.
강화도 석모도에는 해명산, 상봉산, 상주산 등 3개의 산이 있어 행정상으로는 삼산면(三山面)이란 명칭이 붙는다. 섬 속의 섬이다.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 도량의 하나인 보문사는 해명산과 상봉산 사이에 있다. 절이 자리한 곳을 낙가산(洛伽山)이라 부른다. 낙가산이라는 이름은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중국 보타 낙가산(補陀 洛伽山)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관음기도 도량이란 관세음보살을 모신 절 중에서도 소원을 비는 기도처로 특히 유명한 곳을 이르는데 양양 낙산사 홍련암, 남해 금산 보리암과 함께 보문사는 3대 관음기도 도량에 꼽히는 곳이다.
보문사는 풍수지리상으로 기운이 센 땅에 세워졌다고 회자되는 절이다. 우리는 지상에 솟은 산들이 이어지는 산세를 산맥으로 부르고 있다. 물 속으로도 산맥과 같은 암맥(巖脈)이 숨어있다니 신비롭다. 김포 반도와 강화도는 화강암 암봉의 절리현상(節理現象)으로 갈라져 염하(鹽河)가 되었다.
풍수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한반도는 서쪽을 향해 서있는 남자형이며, 강화도는 발기한 남근에 해당하고 석모도는 그 남근의 사정액과 같다고 하듯 강화섬은 기(氣)가 센 땅이라는 뜻이 된다는 해석이다.
강화도 본섬에서 석모도를 가려면 배를 타고 건너가야 한다. 훼리호는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와 삼산면 석포리를 10분 거리로 왕복하고 있다. 석포리 선착장에서 진득이 고개를 넘어 보문사로 가는 길 왼편엔 드넓은 들이 있다. 보문사 주차장 옆에는 잘생긴 반송 한 그루가 서 있다. 일명 “보문사 관음송이”며 수령이 200년이나 되었다. 누운 듯이 윗 부분에서 우산처럼 퍼지는 ‘우산송(雨傘松)이다. 입구를 지키는 명품 소나무이다. 일주문을 지나 언덕길을 조금 더 올라가니 400여년 된 은행나무가 우람하게 그 자태를 뽐내며 고찰의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보문사는 신라 선덕여왕(635) 때 금강산에서 수행하던 회정대사가 창건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보타 낙가산의 이름을 빌어 산 이름은 낙가산으로 하고 광대무변한 관세음보살의 원력을 빌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절 이름을 보문사(普門寺)로 정했다. 그래서 산과 절 이름이 모두 관세음보살을 상징하고 있다.
보문사 석굴설화 있다. 인천 석모도에 살던 한 어부가 있었다. 어부는 생계를 위해 바다로 나가 그물을 던졌는데 인형과 비슷한 돌덩이 22개가 올라왔다. 실망한 어부는 돌덩이들을 다시 바다로 던져 버리고 돌아왔다. 그날 밤 어부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 귀한 것을 바다에 버렸다며 꾸짖었다. 다음날 어부는 노승이 당부한 대로 낙가산으로 불상을 옮겼는데, 현재의 보문사석굴 앞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불상이 무거워져서 더 이상 옮길 수 없었다. 그리하여, 석굴이 불상을 안치할 신령스러운 장소라고 생각하고, 굴 안에 단을 만들어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석굴 앞에는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향나무가 서 있고 마당 한편의 감나무는 씨알이 작은 감화 토종 감나무인 듯 가을을 맞았다. 부처님 열반 모습의 와불과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33관음보탑과 자유분방함의 오백나한상, 법음루, 범종각의 범종은 조성당시 국내 최대의 범종이었으며 육영수 여사가 보시하여 봉안되었다고 한다.
극락보전과 관음전 사이 419개 계단을 10여분간 오르면 눈썹바위 아래에 새겨진 마애석불좌상을 만난다. 보문사의 해수관음을 친견하려면, 이 가파른 산길 계단을 올라야 한다.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땀 흘리며 높은 곳으로 오르는 동안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의 찌꺼기들은 걸러진다. 몸과 정신은 자연스럽게 정화되고 고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침내 기도처에 도달한 순간 기도객들은 이미 기도의 반은 성취하게 된다. 기도가 시작되기도 전에 영험이 먼저 나타나는 것이다.
세어보지도 않은 419여 계단을 밟으며 우여곡절 끝에 염불소리가 우렁찬 눈썹바위까지 올라가 뒤 돌아 섰다. 한 마디로 가슴이 탁 트이는 풍광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서해바다의 조망은 저 멀리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을 배경으로 고기잡이 어선들이 미끄러지듯 물살을 가르고, 이름 모를 무덤처럼 흩어져 있는 수많은 섬들과, 끝없이 펼쳐진 갯벌이 썰물의 햇빛에 반짝거린다.
석불은 금강산 표훈사 주지 이화응과 보문사 배선주 주지가 1928년 조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곳에서 정성을 다하여 소원을 빌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는 영험하기도 이름난 석불이다. 수험생 부모들이 많이 눈에 띈다. 마애석불좌상은 거대한 화강암 석벽에 높이 9.2m, 너비 3.3m에 달하는 거대한 불상이다.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는 관음보살상은 코, 잎, 귀는 얼굴보다 다소 크게 느껴진다고 평가되고, 서민적으로 생겨 보는 사람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싼다고 하는데 풍수에서는 보살상이 앉은 인좌신향(寅坐申向)은 만물이 시작되고 맺는 생성(生成)의 자리로 해석되어서 인지 아들 낳기를 기원하는 소원을 잘 들어준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마애불이 새겨진 거대한 눈썹바위 아래에는 두툼한 옷을 입은 수십 명의 참배객들이 절을 하고 있다. 촛불들이 타오르는 복전함 주위로 울긋불긋한 과일바구니들과 쌀을 비롯한 깨 등의 잡곡 봉지들이 제물처럼 늘어서 있었다. 우리 절에서 손수 준비한 공양물을 올리고 수정스님의 예불의식에 따라 신도들의 염불소리가 낙가산 영험도량에 울려 퍼지고 있다.
내려오는 길에 소원지를 담아 축원해 주는 용왕당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보문사 극락보전을 순례객이 내 절집인양 법당마루에서는 우리 거사님과 보살님들이 간절하게 절을 올린다. 성취는 기약 없고 소망은 끝이 없다...나무아마타불 관세음보살!... 나도 소원하나 빌었다. 부처님! 우리 다사고등학교 수험생! 수능대박 나게 해주세요!
무엇보다 사찰순례의 백미는 주련 감상이다. 보문사 극락보전의 주련이다.
靑山疊疊彌 (청산첩첩미타굴) 蒼海茫茫寂滅宮(창해망망적멸궁)
物物拈來無罣碍(물물염래무가애) 幾看松亭鶴頭紅(기간송정학두홍)
一葉紅蓮在海中 (일엽홍련재해중) 碧波深處現神通(벽파심처현신통)
첩첩한 푸른 산은 아미타 법당이요, 망망한 푸른 바다 부처님 적멸보궁.
세상사 모든 것 마음 따라 걸림 없네. 솔밭의 학 머리를 몇 번이나 보았던가?
넓고 넓은 큰 바다의 한 송이의 붉은 연꽃. 푸른 파도 깊은 곳에 신통력을 나투시네.
하산하는 보문사 입구의 주차장은 마른새우와 밴댕이젓갈이 가득 쌓인 좌판들이 즐비하다. 절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강화 특산물인 순무와 속이 노란 고구마, 강화 인삼막걸리 장수 아주머니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막걸리 생각도 났지만 대구로 되돌아 가려면 시간이 바쁘다.
일몰이 아름다운 낙조의 풍경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여행은 아쉬움이 있어 좋다.
성불하세요!
<다사고 운영위원장 정군표>
'오피니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빛바랜 사진 한 장 (0) | 2015.11.16 |
---|---|
오토바이 안전모 착용, 소중한 생명을 구한다 (0) | 2015.11.16 |
하이, 안녕 (0) | 2015.11.06 |
협심증과 심근경색증 (0) | 2015.11.05 |
청소년이란 직함을 면죄부로 이용하는 ‘비행청소년’ (0) | 2015.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