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사진 한 장
어머니 방에 들어서면 아직도 온기가 느껴진다. 저세상으로 떠난 지 4년이 지나서야 유품을 정리한다. 서랍을 열자 손때 묻은 빗과 손지갑에서 어머니의 체취가 배어 나온다.
서랍장 맨 아래쪽에 놓인 기도서 갈피에서 누렇게 변한 사진 한 장이 나왔다. 어릴 적 큰댁 할아버지 사랑채 벽면 액자에 걸려 있던 것과 똑같은 사진이다. 군복차림으로 입을 굳게 다문 아버지와 무명 한복 차림의 어머니가 다소곳한 자세로 찍었다. 부부라 하기에는 너무나 어색해 보인다. 아버지가 6·25 전쟁으로 자원입대하는 바람에 사진을 찍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그 사진 한 장만큼은 무척 아끼고 있었던 것 같다. 생활력이 강한 어머니셨지만 다섯 자녀를 혼자 감당하기가 벅찬지 가끔 그 사진을 보며 눈물짓곤 했다. “지질히도 복 없는 양반아, 우째 살아가라고 먼저 가노. 아이구 내 팔자야.” 그때는 먼저 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신세 한탄인 줄로만 알았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는 나만 불러놓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남에게 손가락질 받는 짓은 하지 마라. 동생들과 우애 있게 지내거라.” 짤막한 유언만을 남기고 떠나셨다. 내 손을 쥔 채 눈을 감던 마지막 모습이 낡은 사진에서 되살아났다. 어머니도 걸핏하면 “너그 아부지 유언을 망각하는 건 가문에 먹칠하는 거야.” 라며 가장의 몫을 감당케 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사회의 규범을 지키는 일이나 집안 대소사에 예(禮)를 갖추는 일이 너무 싫었다. 걸핏하면 동네 부역에 나가거나 초상 때면 상두꾼 노릇까지 아버지를 대신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왜 나만 이래야 되냐며 어머니를 향해 눈꼬리를 치켜세웠다. 철없이 구는 자식이 안쓰러워서일까 그렁그렁해진 눈물을 훔치기만 할 뿐 아무 말씀도 않았다.
빛바랜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사진 안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십 대 후반의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 정전협정 때 아버지가 잠시 휴가차 들렀을 때 남긴 사진이라 했다. 할머니는 전장에 있는 막내아들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전쟁 와중에 사진을 찍게 했을까. 할머니는 전쟁이 끝나 아버지가 하루빨리 귀가하기를 빌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사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 건지도 모를 일이다. 할머니가 아버지께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도 내게 그랬다. 종일 들일에 시달린 어머니가 팔다리와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하면서도 되레 힘들지 않느냐며 늦게 퇴근하는 내 기분을 살핀다. 아파하는 모습이 역력한데도 위로는커녕 “소작 주면 될 일을 왜 사서 고생하느냐”며 신경질만 부렸다. 어머니인들 편하게 살고 싶지 않았을까. 다섯 자식을 위한 희생을 나 몰라라 했으니 속상해 했을 만도 한데 아무 말씀도 않았다. 나 역시 기대를 저버리고 허튼짓을 했던 자식이 눈 밖에 나기도 했지만, 그 허물을 덮어 두거나 쉬이 건드리지 않았다. 머리 꼭대기에 뿔이 여러 번 솟아나도 참으며 분을 삭일 때가 많았다. 모름지기 부모란 시공을 뛰어넘는 맑은 사랑을 끝없이 쏟아내는 우물 같은 존재인 것 같다.
초대작가 사진전이 열리는 문화예술회관을 찾았다. 액자에 담긴 사진들이 아침 햇살처럼 선명하다. 아프리카의 밀림에서 희귀한 조류를 담은 사진과 장미꽃에 음영을 주어 촬영한 다양한 빛깔의 사진이며, 앵글로 담아낸 수많은 사진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붉은 색상이 유난히 무겁게 보이는 사하라의 모래언덕을 주제로 한 사진에 눈길이 머문다. 황량한 사막 가운데 살아가는 몇 센티미터도 안 되는 생명체를 담아낸 것들이다. 도무지 생명체가 살아가기에는 희망이라고는 없어 보인다. 낮에는 50도를 오르내리고 밤이면 영하의 추위를 마다치 않고 그곳을 지키며 살아가는 생물들에 호감이 간다.
눈앞에 먹잇감이 있는 것도, 천적이 뒤따라오는 것도 아닌데 눈을 휘둥그레 한 채 사막 한가운데서 주변을 살피는 도마뱀의 활기찬 모습을 담았다. 옆 사진에는 독수리의 먹잇감이 된 어린 여우의 무참한 주검을 담은 장면이었다. 죽음의 땅 사막에도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고 있었다. 모든 생명체에 희망의 끈이 없다면 저토록 힘겹게 살아갈 이유가 있을까 싶다. 미물이지만 최악의 환경 속에서 삶을 이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사막을 헤집고 다녀야 하는 고단한 여정은 인간보다 더 힘겹고 치열해 보인다. 자식이란 희망의 끈을 놓쳐 버린 사막여우의 울부짖음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사진 속에서 그늘진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책장 깊숙이 넣어 두었던 사진첩을 꺼내본다. 몇 장의 사진 속에 어머니는 자식들 사이에서 웃고 있다. 자식을 모두 떠나보내고 홀로 사는 집에 어쩌다 찾아온 피붙이가 마냥 좋았을 것이다. 아마도 저 웃음의 시간보다 몇 백 배나 더 긴 시간을 외롭고 쓸쓸하게 보냈으리라. 잠결에 어머니를 만났다. 한복을 차려입은 사진 속 어머니가 저만치 걸어오고 있다. 기쁨도 잠시 두려움이 몰려왔다. 생전에 못다 한 말을 하러 오는가 싶었다. 엉거주춤하게 손을 내밀어 보지만 말없이 지나쳐버린다. 뒤따라가며 불러도 가뭇없이 멀어지기만 한다. 뒤돌아보니 아득한 절벽에 홀로 서 있는 게 아닌가. 너무 놀라 살려달라며 ‘엄마’ 외마디를 지르다 잠에서 깼다. 온몸은 땀으로 흥건했고 내 손에는 빛바랜 사진에 들려있다. 자식도리를 다하지 못한 회한이 사무친 걸까 명치끝이 아려온다.
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장(달성복지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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