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왜(土倭)”로 타도하는 선거전은?
2021년 4월 7일에 치러질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정치권이 뜨거운 요즘이다. 그 가운데 진행된 선거방송에서 후보자들과 소속 정당 관계자들이 쏟아 낸 말들이 실소(失笑)를 자아내게 했다. 2004년에 있었던 일본자위대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일로 몇 해 전 야당의 유력 정치인이 ‘토착왜구(土着倭寇)’로 매도되어 정치적인 공세를 당한 적이 있다. 이후 이념논쟁이 심한 우리 정치판에서 상대방을 폄하하는 용어로 ‘토착왜구’가 종종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장 야당후보자 2명의 단일화가 이루어지면서 여야 양강구도(兩强構度)의 선거전 속에서 여당 후보자의 남편이 “도쿄에 아파트를 구입했다”고 야당 측에서 ‘토착왜구’라는 말을 되돌려주었다. 공수(攻守)가 뒤바꿔 진 것이다.
현재 전해지는 중국의 가장 오래된 한자사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를 보면 ‘왜(倭)’자에 대해 ‘순박하게 따르는 얼굴모습(順皃)’ 혹은 ‘순종적으로 따르는 모양새(顺从的样子)’를 뜻한다고 했다. 일본(日本)이라는 국명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AD 701년 이전 중국고전 회남자(淮南子)와 삼국지동이왜전(三國志東夷倭傳)의 ‘왜인(倭人)’ 혹은 ‘왜괴(倭傀)’라는 표현도 ‘체구가 작고 순종적으로 잘 따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왜(倭)는 화합할 화(和)자와 사람인(人)자가 결합된 것이라고 일본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일본(倭)은 한반도에 대한 끊임없는 침략과 점령의 야욕으로 일관한 이웃 국가였다. 섬나라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선진 문물, 식량 확보 등을 위해 고대 신라시대를 시작으로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이어진 왜구들의 침입, 조선 중기 임진왜란 등 수많은 상처와 아픔을 우리에게 남겼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의 일제 강점기 36년을 겪으면서 자원수탈, 민족문화 말살, 해방이후 친일잔재 청산 과정에서 국론 분열의 문제까지 이어졌다. 우리 국민들에게 ‘왜(倭)’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며, 화합(和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에 의하면 우왕(8년, 9년, 14년) 때 3회, 공민왕 5년 9월에 화척(禾尺才人)들의 ‘가짜 왜구(假作倭敵)’ 준동이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에도 태종3년, 세종28년, 세조2년, 성종9년, 성종13년에 가왜(假倭)의 활동이 있었다고 한다. ‘지역 토착화된 왜구(土倭)’는 1908년 4월 5일 대한매일신보에서 위정척사를 주장하는 편에서 개화파를 타도하기 위해 토왜(土倭)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우국지사 이태현(李太鉉, 1910~1942) 선생의 유고문집 ‘정암사고(精菴私稿)’에 실린 글 ‘수왜십조죄문(數倭十條罪文)’ 중 10번째 항목에도 “모두가 창귀(倀鬼) 토왜(土倭) 무리가 오랑캐를 끌어들여 지휘하고 악을 퍼뜨리고 윤리를 멸한 죄를 저질렀다. 후세에 임금 되는 이는 반드시 이 토왜의 죄를 먼저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1910년 6월 22일자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에도 ‘토왜천지(土倭天地)’라는 칼럼이 실린 바 있다.
이렇듯 우리의 뿌리 깊은 반일(反日)․반왜(反倭)의 감정은 언제나 정치․사회적으로 활용되기 아주 좋은 수단이고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정치(政治)란 비전, 정책, 행동으로 대의명분(大義名分)을 보여줌으로써 유권자 표심을 얻는 것이다. 상대방을 비방 혹은 폄하함으로 자신이 상승하기는 어렵다. 불필요한 언쟁은 감정만 격화되어 끝내는 자신의 인격까지 뭉개는 꼴이 된다. 행동할 대의명분이 없다면 적어도 “유권자의 말에 귀를 줌으로써 표심을 얻는(以聽得心)” 전략을 구사함이 보다 바람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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