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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不義)에 맞서는 의(義)의 싸움” 김충선을 기리는 녹동서원

비슬신문 2023. 3. 13.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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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에 빛나는 역사 속 인물 - 사야가 김충선

불의(不義)에 맞서는 의()의 싸움김충선을 기리는 녹동서원

 

녹동서원 윤혜숙 기자

사람이 사나이로 태어난 것은 다행한 일이나 불행하게도 문화의 땅에 태어나지 못하고 오랑캐 나라에 나서 끝내 오랑캐로 죽게 된다면 어찌 영웅의 한 되는 일이 아니랴 하고 때로는 눈물짓기도 하고 때로는 침식을 잊고 번민하기도 하였습니다. 다만 저의 소원은 이 나라의 예의 문물과 의관풍속을 아름다이 여겨서 예의의 나라에서 성인의 백성이 되고자 할 뿐입니다.”

-모하당집 강화서(귀순하기를 청하는 글)에서-

1960년대 남자 후손 27명의 사진을 수집해 제작한 영정 윤혜숙 기자

임진왜란(1592~1598) 당시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의 선봉장으로 조선에 왔다가 투항한 사야가(沙也可) 김충선(金忠善,1571~1642)을 배향하는 서원 건립은 영조와 정조 때 삼도(三道) 유림이 뜻을 모아 상소한 결과 1794(정조 18)에 녹동서원을 건립돼 위패를 봉안하였다. 1864(고종1)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었다가 1885(고종 22)에 영남 유림과 김씨 문중이 합심하여 재건하였고 1971년 국가의 지원을 받아 100m 떨어진 가창 우록리 현재의 위치로 이전 증축하였다. 정면에 우미산(747m), 왼쪽은 봉화산(473m)과 삼성산(668m), 오른쪽 햇살 따스한 삼정산(566m)자락에 사당 녹동사, 숭의당, 향양문, 유적비, 신도비, 충절관, 한일우호관이 있다.

향양문 _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남쪽을 향하고 있다.)으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윤혜숙 기자

녹동서원은 강학 공간과 제향 공간을 구분한 전학후묘(前學後廟) 형태를 띠며 일반서원과 달리 이곳은 후학들이 스승을 기리기 위해 세우고 학문을 공부하던 곳이다. 사당이 강당의 우측 배면에 자리 잡아 병렬형축을 이루고 외삼문인 향양문을 들어서면 정면 5, 측면 1.5, 겹처마 팔작지붕에 중앙은 대청, 2통간 온돌방 건물 형태를 띤 강학당인 숭의당(의로움을 존중하는 집)자리하며, 기둥마다 걸린 주련(柱聯)은 조선 말기에서 근대기에 활동한 대구 출신 서화가 석재 서병오 선생의 글씨다. 우측 후면에 내삼문을 들어서면 정면3, 측면 1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녹동사가 있다. 위패와 초상화를 모신 녹동사에서는 해마다 음력 3월 중정일에 배향하고, 음력 시월 첫째 일요일에 묘제를 지낸다. 서원 뒤쪽 삼정산 세 봉우리 중심점에 장군의 묘소가 있다. 서원 서쪽에는 생가가 있고. 2012년 건립한 한일우호관에서는 장군의 유품과 기록을 전시 중이다.

김충선과 3명 부인의 묘. 진주목사 장춘점의 여식 정부인 장씨 사이 생 5남 1녀를 두었다. 윤혜숙 기자

"명분과 대의 없는 전쟁 일으킨 왜군에 환멸을 느낀다.“

임진왜란 당시 20만 대군을 출정시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을 '대의와 명분 없는' 전쟁이라며 조선에 귀화한 사야가는 조선군에 조총과 화포, 화약 제조기술을 전수했고, 자체적으로 조총부대를 조직하여 전투에 참가해 공을 세웠으며 사야가의 기술전수로 조선은 1593년 조총 제조기술을 확보하게 되었다.

어명을 기다리기 전에 의병을 일으켜 충성을 다했으며 임진왜란, 이괄의 난, 병자호란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운 삼란공신(三亂功臣)으로서 1617(광해군10) 2품 정현대부에 봉해졌다. 선조(宣祖) "바다를 건너온 모래[]를 걸러 금()을 얻었다."하여 김해김씨와 충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아 사성[(賜姓 임금이 공신에게 내려 주던 성()] 김해김씨의 시조가 된 김충선의 본명은 사야가(沙也加), 자는 선지(善之), 호는 모하당(慕夏堂)이다. ()는 여름이란 뜻이 아닌 조선을 뜻하며 '조선을 사모하는 집'을 의미한다. 후손들이 정리한 '모하당집'에서 장군은 중국을 대중 하, 조선을 소중 하로 부르며 인륜의 도가 행해지는 나라라고 하였으며 노후에는 가훈과 향약을 지어 자손을 훈도하고 좋은 마을 만들기에 전념했다. 모하당 김충선을 시조로 하는 사성 김해김씨는 김충선이 달성 가창면 우록리(友鹿里)로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18대손까지 이어져 우록리(사슴과 벗하는 마을)80여호, 전국에 약 7,500명의 후손이 살고 있다.

신도비. 1992년 5월 31일에 임진왜란 400주년 기념행사 때 세워졌다. 윤혜숙 기자

김정희 대구시 문화관광해설사는

거의 모든 항왜(降倭 : 조선에 항복한 왜군)가 평생 신분을 숨기고 살았지만 김충선 장군은 귀화 사유부터 전공(戰功)까지 조선에서의 50년 기록이 전해지는 유일한 분이다.”라고 이야기하며 모하당 초상화에서 김상보 종친회장(시조 모하당의 12세손)의 모습이 보인다며 웃었는데 정말 그랬다.

복과 행운을 의미하는 조형물로 복주머니 안에 마네키네코라는 일본 고양이를 넣어 한,일 양국의 행운을 기원하는 뜻이 있다고 한다 윤혜숙 기자

배반한 역적에서 평화주의자로,

1960년대까지 일본에서는 김충선 장군이 조선이 만든 허구 인물이라고 주장했었지만 1970년대 일본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1923~1996)가 녹동서원을 방문한 뒤 펴낸 책에서 장군을 알린 후 재조명되어 김충선 장군 귀화 400주년이던 1992년에는 일본 NHK 방송이 출병에 대의 없다- 풍신수길을 배반한 사나이 사야가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고 아사히신문에서 양식 있는 무사의 의로운 결단기사가 실린 뒤 일본에 사야가 연구단체들이 설립되었으며, 1998년 한국과 일본 교과서에 김충선 장군의 이야기가 실렸다. 사야가 김충선(金忠善)의 실체는 지금도 다 드러나지 않았고 조선에 귀화하기 전 일본에서 어떤 인물이었는지 일본에는 남은 기록이 없다.

2022720만 명이 넘는 관객수를 동원한 영화 한산 : 용의 출현에서 의()를 말하는 준사(영화 속 인물), 왜군이 왜군을 향해 칼날을 겨누는 장면이 픽션 일거라 생각했다면 그 왜군들 중에서 조선으로 귀화한 사람들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겠다. 그 의()와 예() 때문에 감 충선 장군은 조선에 귀화했다.

일본에 가장 먼저 소개된 일본작가가 찾아다니면서 쓴 책 윤혜숙 기자

올해로 임진왜란 종전 8주갑(431)을 맞았지만 가깝고도 먼 이웃 한·일은 지금 독도,위안부 문제 등 밝은 앞날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모하당은 한·일 우호의 상징이다. 장수로서의 배신과 따르고 싶었던 군자(君子)의 길, 431년 전 이 땅에 온 모하당이 전쟁 선봉장 대신 조선의 선비가 되려 한 고뇌를 돌아보며 의와 예를 좇아 조국과 가족에 등을 돌리는 건 가능한 삶일까. 일상사에 좌충우돌하는 범부(凡夫)에게는 가늠하기 힘든 삶이다.

한일우호관 윤혜숙 기자

남풍이 때때로 불제 고향을 생각하니

조상의 무덤은 평안한가 일곱 형제는 무사한가

구름을 보며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과

봄풀을 보고 솟아오르는 생각이

어느 때인들 없을소냐

아마도

세상에 흉한 팔자는 나 뿐인가 하노라

<사설시조 - 모하당집>

 

남풍이 건듯 불어

행여 고향 소식 가져온가

급히 일어나니

그 어인 광풍인가

이내 생전에 골육지친 소식

알 길이 없어

서러워하노라

<남풍유감> 중에서

평화의 종 윤혜숙 기자

모하당집

집안에 소장되어 오던 김충선의 유문(遺文)이 실화(失火)로 대부분 소실되었는데, 1788(정조 12)에 후손 김한조(金漢祚)가 김사눌(金思訥)이 소장하고 있던 김충선의 유록(遺錄)을 얻게 되었다. 이후, 1797(정조 21)에 김한조가 연보 등을 권수에 싣고, 김충선의 유고를 상권으로 하고 새로 모은 김충선의 전() 등 부록을 하권으로 편차한 후 1798년에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1841(헌종 7)에 후손 김한보(金漢補김한정(金漢正) 등이 초간본을 교정한 후 1842년에 개정·증보하여 중간하였다. 중간본에는 강세륜(姜世綸정신(鄭藎강필효(姜必孝)의 서문과 박광석(朴光錫)의 발문이 추가되어 있다. 모하당 문집, 모하당 실기라고도 불리우는 모하당집(慕夏堂集)31책으로 되어 있다. 판식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으로 상하 이엽 화문 어미(上下二葉花文魚尾)이다. 크기는 세로 31.0, 가로 21.2, 반곽은 세로 22.0, 가로 17.5이다. 1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모두 '모하당 문집(慕夏堂文集)'이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윤혜숙 기자(rhea3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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