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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나의 인생! 구주완 연극인을 만나다

비슬신문 2023. 6. 1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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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나의 인생!

구주완 연극인을 만나다

 

연극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른 장르와 달리 연극은 배우와 관객이 한 공간 안에서 만나기 때문에 더 생동감이 있다.

오늘날, 삶이 윤택해지면서 문화에 대한 욕구가 늘어나 공연, 전시는 물론이고 문화센터나 문화원, 도서관 등에서의 강좌 신청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연극은 쉽게 접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닌 듯싶다. 이번 지면을 통해 지난 5월 초, 어린이 국악 뮤지컬어린왕자공연을 마친 구주완 중견 연극인을 만나 연극에 대해 들어보기로 한다.

 

연극계에 몸을 담은 계기라면?

: 고등학교 시절 서울 여의도 백화점에 소극장이 있어서 처음 구경 갔다. 그때 공연한 연극이 여자 만세라는 작품이다.

70세 할머니가 하숙생으로 들어오면서 3개월 동안 좌충우돌 일어나는 유쾌한 여자들의 반란이 그 내용이었다. 소극장이라서 바로 앞에서 연극 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봤는데 정말 멋져 보였다. 땀 흘리며 연기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고 그 기억이 오래오래 남았다.

그게 계기가 되어 무작정 연극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 대학로에서 연극 할 때는 많이 힘들었다. 연극인이 연극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기에 발품을 팔아 직접 홍보 포스터를 붙이러 다녔다. 요즘에야 홍보 게시판이 따로 만들어져 깔끔하게 그곳에 붙일 수 있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아 전봇대나 눈에 띌만한 곳을 찾아다니며 붙였다. 붙이고 나면 구청에서 단속이 나왔다. 붙이면 구청에서 나와 떼고, 붙이면 떼는 그야말로 숨바꼭질 같은 일이 되풀이되었다고나 할까.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공연하기까지의 과정을 말한다면?

: 극단에서 먼저 작품을 정해서 정기공연 형식으로 가는 방법도 있고, 배우들끼리 하고 싶은 작품을 정해서 공연을 하기도 한다. 무대에 오르기까지 장소를 선정하고 연습하는데 최소 2개월 정도 걸린다. 대구에서 하는 대구연극제 같은 경우는 거의 열정페이다. 연습은 극단 연습실에서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는 연습실을 빌려야 했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억에 남는 작품은?

:1989년부터 공연했으니 공연한 지 35년 정도 되며 작품 편수는 160여 편이다. 그 한 편 한 편이 다 소중하고 애정이 간다.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 많지만 그래도 한두 편을 소개하자면, 2005년에 공연한 늙은 부부 이야기라는 작품이다.

두 노인이 인생의 황혼기에 만나 사랑하고 죽음으로 이별하기까지의 사계절을 담은 2인극이다. 할머니와 고스톱 치는 장면이 나온다. 첫뻑(시작하자마자 싼다고 하는 것)을 했는데 저뿐만 아니라 상대 배우도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화투 치는 장면을 관객들이 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작품은 소품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일어난 담배가게 아가씨라는 작품이다. 드라마도 그렇겠지만 연극도 술이 소품으로 필요할 때가 있다. 진짜 술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물을 넣은 소주병을 사용하는데 준비되었다기에 그런 줄 알고 마셨는데 물이 아닌 진짜 소주였다. 한 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잔을 마셨으니 어떠했겠는가. 대사가 꼬여 혼났던 기억이 난다.

일본인 수사 역을 많이 맡은 것으로 아는데?

:이상화 선생의 시를 작품으로 만든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북구 출신인 이태원 소설가의 작품 객사에서 순사를 맡았다. 순사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저만 보면 일본 순사, 순사한다.

아시다시피 이 두 작품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역사의식을 일깨워주는 작품들인데 비록 일본 순사 배역을 맡았지만, 할 때마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불쑥 솟는다. 그 시대를 이해하기 때문에 자라나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두가 나라의 소중함을 깨닫고 우리 것을 지켜나갔으면 좋겠다.

조상들의 얼과 정신이 깃들어 있는 전통문화를 계승발전 시키는 것도 나라 사랑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의식을 고취 시키는 그런 작품은 꾸준히 이어졌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한 채 막을 내려 안타깝다.

 

연극인으로서의 보람과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 3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님이 경찰공무원이어서 월급이 적어 어머니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 어렵게 공부를 시켰더니 연극 하겠다고 했더니 뭘 먹고 살려고 그러느냐며 반대가 심했다. 예술가들이 가난하다는 말이 회자 되고 있듯 그 당시에도 수입이 시원찮다는 걸 어머니도 아셨던 것 같다. 살아계실 적에 효도하지 못해 죄송하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무대에 서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좋았다.

흔히 하는 말로, 잘 하는 일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고 잘 사는 것이라고 하듯 저는 지금까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으니 잘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늘나라에서도 막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걸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시리라 믿는다.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얼마 전에 공연을 마쳤기에 아직 다음 공연을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꿈과 희망을 담은 아이들을 위한 공연을 제가 사는 이곳 달성에서 하고 싶다. 특히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공연하고 싶다.

공연할 때와 달리 수줍음이 많은 구주완 연극인을 무대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그 날이 기다려진다.

 

우남희 기자(Woo795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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