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촌을 아시나요?
-하빈 봉촌 2리 낙동마을 -
‘오랫동안 꿈을 꾸며 기다렸다
이제 새로운 평화의 꽃길이 열리다.’
하빈 봉촌2리 낙동마을 골목에서 만난 문구다.
봉촌2리(이장. 이종태)는 전재민촌이다. 전쟁이 일어나면서 많은 피난민들이 대구로 내려왔고 전쟁이 끝나면서 고향으로 돌아간 분들도 있지만 그대로 정착한 사람들도 많았다. 이렇게 정착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전재민촌이라고 한다.
전쟁이 발발한 지 70여 년이 되었다. 더 이상 전쟁으로 인한 아픔은 없고 평화만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하빈 봉촌리 낙동마을, 그래서 이 마을을 PMZ(Peace Memorial Zone)즉, 평화기념마을이라고 한다.
마을은 대통령 직속‘지역발전위원회’주관 마을 환경사업인‘새뜸 마을 사업’의 대상지로 선정되어 아름다운 골목마을로 재탄생하였다.
골목은 피난민 마을로 시작했던 과거와 연을 재배하는 현재, 마을 주민의 행복한 모습을 담은 미래라는 3가지 테마로 구성되었으며, 8개의 각 골목에는 주제를 정해 소식 골목, 피난 골목, 평화 골목, 삶의 골목, 그리움 골목, 쉬어가는 골목, 추억 골목, 회상 골목으로 꾸며져 있다.
낙동마을이 오늘이 있기까지 살신성인의 자세로 앞장선 분이 있다. 그분이 노상빈 목사이다. 이 분의 공덕비를 통해 송곳 하나 꽂을 곳이 없던 모래땅에서 오늘의 봉촌리가 된 과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노상빈 공은 6·25 전쟁 때 남하하여 대구에서 우거(寓居)하던 중, 1958년 정부의 시책으로 이곳이 전재민 정착지로 책정되면서 오게 되었다. 당국으로부터 건축자재를 받고 입주할 사람들끼리 천막을 치고 벽돌과 기와를 찍어 3여 년의 각고 끝에 99동을 완공하고 400여 주민이 입주하게 되었다.
당초에 호당 3천 평의 개간지를 무상으로 분양받기로 했는데 4·19 의거와 5·16혁명으로 무산되어 정착민들은 토지 한 평 없는 영세민이 되어 초근목피로 연명하거나 고용살이 혹은
식모살이, 품팔이로 살길을 찾아 헤매게 되었다.
공은 같은 난민으로서 헐벗고 굶주림의 슬픔과 아픔을 함께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질 것을 다짐하고, 1961년 자진 입주하여 공생공영(共生共榮)을 위해 자조 근로 사업체를 결성하고 각 공사장을 찾아 단체 취로를 알선, 부녀자는 편물반, 홀치기반을 만들어 공동작업을 하도록 했다.
1968년 봉촌교회를 설립하고 가옥 일부를 개조하여 예배당으로 삼아 주민들의 의지할 곳을 만들면서 기독교 세계봉사회를 찾아 구호품인 소맥분을 매월 100포씩 2년간 수배하여 나누어 주었다. 외원 기관인 메노나이트 및 성결교회 구호부에서 소맥분과 기타 식용품, 학용품 등 많은 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앞장섰다.
그뿐만 아니라 도청 사회과에 요청하여 무상 양곡을 얻어 생계를 도우면서 근검저축하여 5여 년 동안 호당 평균 천 평 이상의 토지를 매입하였고 20kg 원동기를 구입하여 자가발전으로 전 가구에 불을 밝히다가 70년에 한전에 의뢰하여 가가호호에 전기를 가설하여 어둠을 물리쳤다.
그의 부인도 보모교육을 받아 농번기에 탁아소를 경영하여 일손을 돕고 기독교 아동복리회에 지원 요청하여 초등생 30명을 매월 7천 원씩 5년간 학비 보조를 하였다.
지역 국회의원이었던 김성곤 의원이 지원한 양토 자금을 전용하여 임야를 매입하여 마을 공동묘지를 만들고 마을 부녀회 기금 및 외원금으로 노인정을 세워 경로사상을 고취하였다.
70년부터 소득증대사업의 일환으로 특작을 위시하여 양우, 양돈, 양토, 양계 등 축산과 양잠, 과수, 각종 묘목 등 각 단지를 조성하여 소득증대사업자금을 융자하여 차여 농가에 적절히 분배하여 많은 소득을 올렸다.
불편한 교통으로 말미암아 농작물 및 기타 각종 생산물의 반출에 지장을 덜기 위해 외부 찬조로 도로부지를 확보하고 주민들의 노력으로 하산, 봉촌간 진입로를 개설하고 1987년 달성군청과 주민의 부담으로 진입로 포장을 마쳐 주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을 해결하였다.
이러한 공로로 주민들로부터 감사장, 군수 표창장, 도지사 표창장 등 수많은 감사장과 표창장을 받았으며 주민들에 의해 마을 회관 앞에 공덕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이종태 낙동마을 이장은 “전재민 1세대들은 합천, 경산, 김천 등지에서 오셨다. 정부가 무상으로 토지를 지원하겠다는 정책만을 믿고 정착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유야무야(有耶無耶)되어 고생을 엄청 많이 하신 분들이다. 대부분 다 돌아가시고 15명 정도 계시는데 이들을 비롯하여 고령화된 주민들이 건강한 식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공모사업에 신청했는데 선정되었다. 영양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식단을 짜서 부녀회원들의 수고로 저녁마다 경로당에 모여 함께 저녁을 먹는다.
한 달 계획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다들 좋아하고 서로 단합도 잘 된다. 마을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을 만나면 “구경할 게 뭐 있다고” 하면서도 슬쩍 다가가 말을 걸고 고생담을 이야기처럼 재미있게 푼다 ”고 했다.
우남희 기자(Woo795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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