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도 정신과 박정희 그리고 반공주의자 === 구관모
나는 이 글에서 인간 박정희의 고뇌와 애국애족의 정신을 대신 전할 능력은 없다. 나는 정치가도, 사학자(史學者)도, 기자도 아니다. “제도권 안의 모든 사람들이 순풍에 돗 달고 안전하게 갈 때, 풍랑에 시달리다 보니 단숨에 피안에 도달한, 아주 특별하고 희귀하게 선택된 민초(民草)일 뿐이다”
살다보면 바람보다 먼저 눕던 잡초가 거목이 되는 수도 있다. 그래서 선혈이 뚝뚝 흐르는 것과 같은 나의 글이, 더욱 광활하고, 진솔하고, 귀하고, 가치 있고, 정확한 박정희 평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이글을 쓰게 된 동기는, 고 이병철 회장의 마지막 질문에 자연 의학자인 내가 답하는 것이 처음이라 의미가 깊고, 그 질문에 따라가다 보니 이병철과 인연이 깊었던 박정희, 정주영, 홍진기, 한용외 등의 인재들이 나타났고, 더불어 그들을 추적 하다보니 그들의 인생에 풍덩 빠져버리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집필 과정에서 스스로의 사생관(死生觀)이 확실하게 정립되었다는 것은 망외(望外)의 기쁨이다.
필자는 인간 박정희에게서, 남(南)에서는 일본인에게, 북(北)에서는 소련군에게, 역사의 질곡에서 돌아가며 식민지를 살면서, 7남매를 보호하려고 몸부림쳤던 가련한 내 아버지 모습과 동시에, 일본 장교 군복을 입고, 긴 칼을 차고, 갈기를 휘날리며 광야를 달리며, 대의를 위하여 목숨을 초개처럼 던져버리는 무사도(武士道) 정신을 봤다.
“계엄선포 한 달 전쯤인가 박대통령이 나를 불러요. 집무실에 들어갔더니 박대통령은 일본군 장교 복장을 하고 있더라고요. 가죽 장화에 점퍼 차림인데 말채찍을 들고 있었어요. 박 대통령은 가끔 이런 복장을 즐기곤 했지요. 일본군 장교 시절이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다카키 마사오 중위로 정일권 대위 등과 함께 일본군으로서 말을 타고 달리던 시절로 돌아가는 거죠. 박 대통령이 이런 모습을 할 때면 그분은 항상 기분이 좋은 것 같았어요”
(1991년 강창성 전 보안사령관의 중앙일보 인터뷰 내용 중)
아울러 박정희는 술을 마시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일본의 한시를 읊곤 했는데, 한 번은 박정희가 육군 준장 시절 술에 취해서,
“말채찍 소리도 고요히 밤을 타서 강을 건너니,
새벽에 대장기를 에워싼 병사들의 떼를 보네“
라는 일본 시를 읊었는데.
박정희와 함께 술자리에 있던 한 육군 소장이, 그 시가 사무라이를 주제로 한 시라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박정희를 향해 "그 일본 것 되게 좋아하네~"라고 비아냥거리자, 박정희는 기분이 상해지 벌떡 일어나 술자리를 뛰쳐나간 적도 있었다.
박정희는 일본 사무라이 문화 무사도의 열렬한 팬이었다. 박정희의 정보담당관이었던 최세현은 박정희에 대해서 “그는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사무라이 영화는 거의 대부분 직접 들여와서 보곤 했었다.”라고 말했으며, 일본으로 파견된 중앙정보부 간부는 “일본에 근무할 때 사무라이 영화나 ‘메이지 유신’ 전후를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는 거의 다 사 모아 고국에 보냈었다.”라고 증언했다
박정희는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뒤 1961년 11월 12일 일본을 처음 방문한다. 아카사카의 한 요정에서 일본의 유력인사들과 술자리를 가진 박정희는 유창한 일본어로 “나는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서 정치도 경제도 모르는 군인이지만, 명치유신 당시 일본의 근대화에 앞장섰던 지사들의 나라를 위한 정열만큼은 잘 알고 있다. 그들 지사와 같은 기분으로 해볼 생각이다”고 밝혀, 일본이 조국의 발전 모델임을 천명하고 만장에 박수갈채를 받았다.
세상이 좋아져서 일본어를 몰라도, 한국에 가만히 앉아서 일본 전국시대 드라마와 영화를 필자도 일천 편 이상 보게 되었다. 일본 민속 박물관을 운영하려면 일본의 문화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고, 골동품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라는 것이 처음에는 대장부의 기상이 보여 흥미가 있지만 자꾸 보면 그게 그거다. 맹목적 충성만 강요하고, 과장되고 잔혹하고...
아무튼 박정희는 무사도에 심취해 있고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철저한 반공주의자다.
“통일을 안 했으면 안 했지, 우리는 공산식으로 통일은 못 하겠다. 통일이 된 연후에 북한 땅에다가 자유민주주의의 씨를 심을 수 있는 민주적인 통일을 하자는 것이다.
(제6대 대통령 선거 유세 (1967.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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