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산에 은둔해 살았던 함안 조씨
한덤마을의 조길방 가옥
인적이 뜸한 산길을 달린다. 바쁘지 않으니 서두를 것도 없다. 그 흔한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지 않고 간간이 보이는 이정표를 보며 간다. 차창을 여니 초록이 와락 차 안으로 들어온다. 라디오를 끄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 새소리에 나도 모르게 흥얼거린다. 얼마 만인가. 멀고 먼 길은 아니지만 혼자 떠나는 즐거움을 누린다.
목적지의 이정표가 눈앞에 있다. 하마터면 놓칠뻔했다. 핸들을 급하게 왼쪽으로 돌려 오르막길을 오른다. 차가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길이 목적지로 이끄는 것 같다.
가파르다는 신호를 보낼 즈음, 서너 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나왔다. 사방이 산이다. 만 첩첩 둘러싸여 술래도 찾기 힘든 이곳에 대 여섯 집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행정동은 정대 1리, 한덤 마을이다.
차가 달려온 길이 서쪽으로 나 있으니 서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몇 채 되지 않는 집도 서향이다.
조길방 가옥을 다시 찾았다. 마당에 들어서니 전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훈기는 없고 바람이 주인 없는 집을 들락거린다.
함안 조씨인 조길방의 9대 조부가 지금의 대구 동구 동촌지역에 살다 집안의 화를 피해 이곳 최정산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고 한다. 동촌은 이곳에서 동쪽 지역이고, 이곳은 동쪽을 등진 서쪽이다. 동쪽으로 보지 않겠다는 뜻이 담겼음이다. 집안에 어떤 변고가 생겨 이렇게 등을 돌리고 싶었을까.
상량문에 갑진년이란 연도가 나와 있다. 대청마루에 걸린 교지에도 ‘건륭’이란 연호가 쓰여 있다. 그렇다면 이 집은 1784년, 정조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던 갑진년에 지었다고 할 수 있다.
敎旨교지
趙重基爲 嘉善大夫(乾隆三十九年)
乾隆三十九年(건륭39년)
敎旨교지
趙重基爲 折衝將軍 行龍驤衛 副護軍者
乾隆三十八年六月
건륭 38년은 영조 49년 (1773)으로 조중기를 무관으로서 최고위급 관직인 절충장군 행용양위 부호군에 임명한다는 내용의 교지다.
敎旨교지
趙時璠爲 嘉善大夫 同知中樞 府事者
乾隆二十一年十一月
敎旨교지
趙裕載爲 折衝將軍 僉知中樞副使 妻 金氏爲淑夫人者
乾隆二十九年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는 중추원에 속한 정 3품 무관의 벼슬이다.
敎旨교지
孺人 李氏 爲 淑夫人 者
乾隆三十八年 十一月二十八日
折衝將軍僉知中樞副使 趙重基妻
敎旨교지
孺人金氏 贈貞夫人者
乾隆二十二年八月二十三日
건물은 안채를 중심으로 날개와 같은 좌·우측에 사랑채와 아래채가 있으며 전체 건물은 아래쪽이 트인 ㄇ자형 건축 구조로 되어있다. 안채의 마루 우측에는 건넌방, 좌측에 안방과 부엌으로 된 초가 4칸 집으로 정착 당시에 건립한 건물이라고 하며, 사랑채는 3칸 초가집으로 왼쪽에 헛간 1칸과 온돌방 1칸, 외부에서 출입이 쉽도록 정면에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아래채는 정면 3칸 초가집으로 우측에 마구간 1칸, 가운데 온돌방 1칸, 왼쪽에 곳간 1칸이 있다. 사랑채와 아래채 등은 정착 당시에 지은 건물이 아니라 다시 지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 주택발달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마루에 걸터앉아 숨어 산 조길방 조부를 생각하니 문득 길재 선생의 시가 떠오른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선생의 시와 맥락은 다르지만 별반 차이가 있으려나 싶다. 해마다 누군가가 와서 이엉을 이고 세월이 내려앉은 대청마루를 쓸 것이다. 그래도 이렇듯 간간이 찾는 이가 있으니 빈집이지만 빈집이 아니다. 마음 한 자락 내려놓고 싶으면 다시 찾아올 집이다.
우남희 기자(Woo795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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